애둘맘 현실육아_아픈 만큼 너도, 나도 성장하기를.
6월 2일 새벽 1시 무렵. 첫째가 울먹이며 말했다.
무슨 안 좋은 꿈을 꾼 건지, 잠꼬대인 건지, 진심이 터져 나온 건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아"
만 42개월 아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울음 섞인 한마디.
첫째의 질투와 서운함을 피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수유도 거실 소파에 기대 편히 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방에 들어가서 하고 울며 보챌 때도 화장실 가는 척 안고 들어가고 (집이 내가 숨는다고 숨어질 대궐도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둘째를 안고 있어야 할 때도 "엄마한텐 근형이가 보물 1호야. 네가 최고야. 엄마한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첫째의 눈을 보며 끊임없이 말 걸어주곤 했다.
그런데, 고작 만 세 살짜리 입에서 나온 말이.."내가 사라지는 것 같다"니..(이 와중에 표현력은 무엇인가..) 마음이 짠했다. 동생의 존재가 한밤중에 잠을 뒤척일 만큼 아이에겐 너무나도 큰 변화였던 것은 틀림없었다.
둘째를 가졌다고 했을 때 다들 그랬다. 첫째에게 동생이 생겼다는 것은, 부모님의 이혼과도 맞먹는 충격이며 아내에게 첩이 생긴 것과 같은 스트레스라고. 엄마아빠 딴에는 잘한다고 했지만, 진심과 노력이 모두 절절이 다가가기엔, 첫째도 여전히 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팠던 아가였다.
첫째의 쇼크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조리원 퇴소와 함께 둘째가 집에 오는 날부터 우리 부부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가는 집에 두고(시어머니 찬스) 아가 옆에 첫째가 갖고 싶다는 선물을 뒀다. 그리고 하원 시간에 맞춰 첫째를 데리러 갔다.
"집에서 동생이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누나된 것을 축하하는 선물도 준비해놨어"
첫째는 빨리 동생이 보고 싶다며 두 손을 번쩍 들며 팔짝팔짝 뛰었다. 현관문을 여는 동시에 첫째는 동생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동생 옆에서도 팔짝팔짝 뛰며 주위를 맴돌았고 자기가 보기에도 아가가 연약해 보이는지 동생 얼굴에 난 솜털을 보듬듯 천천히 고사리 손으로 쓰다듬었다.
"안녕? 쑥쑥아. 나 누나야. 너무 귀여워"
그러고선 동생에게 이불을 덮어주겠다며 자기 침대에서 이불을 질질 끌고와 연신 덮어주는 첫째였다. 그렇게 좋아하고 이뻐해 줬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동생이 생겼다는 건 결국 "너도 나도 넘어서야 할 과정이구나" 싶다.
먼훗날(?) 남매간 우애가 좋아지고 서로의 존재에 감사할지라도,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귀한 선물이 된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라고 받아 들... 여야 하는데
ㅠㅠ
"내가 사라지는 것 같다"는 아이의 말이 귓가에서 끝없이 메아리쳤다.
그래서일까. 서럽게 울던 첫째를 달래고 잠깐 잠들었는데, 세상에나.. 만 서른여섯 나이에 '중간고사'를 보는 꿈을 꿨다. 그것도 대학도 아닌 고등학교 중간고사라니.
꿈속에서의 나는 그날이(?) 중간고사인 줄도 모른 채 등교했고 아무리 시험지를 넘겨봐도 아는 문제라곤 1도 없는 그런 꿈이었다. 어쨌든 짱구를 굴려가면서 문제를 겨우겨우 풀었다. 그리고 OMR 카드로 옮기는데 그마저도 밀려 쓰고 말았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종이 울렸고.. 황급히 선생님을 부르며 들어 "OMR 카드 바꿔주세요"하는 그런 학생이.. 바로 나였다.
식은땀에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데,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다음날 시험과목이 '우체국'(?)이란다. 눈과 손은 OMR 카드에 쏠려있는데 귀는 친구들 얘기에 쏠렸다. '아니 우체국 과목은 대체 뭐지? 그런 과목이 있었나? 책도 없는데 무슨 수로 공부를 하지?' 심장이 16배속으로 뛰어대는 찰나..
둘째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꿈이다. 너무나 생생해서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 이런 개꿈 같으니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육아’라는 인생의 큰 시험을 치르는 꿈이 아니었나 싶다.
육아에 어찌 정답이 있겠으며, 그래도 짱구를 굴려대며 나름의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OMR 카드를 밀려 쓰는 것처럼 그마저도 어긋나 버리는 나의 육아현실을 반영한 게 아니었을까. '우체국'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아주 생소한 과목은, 첫아이를 만 세 살까지 키우며 인생의 한고비 넘겼다고 생각했을 즈음, 둘째가 태어나고 '애둘 육아'라는 새로운 시험이, 어떠한 준비도 안된 채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첫째의 질투가 대놓고 심한 편은 아니다. 물론 아직 동생이 온 지 한 달밖에 안됐기에 (결코)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근호 귀여워~ 아이 귀여워”
“누나야~ '누나' 해봐”
첫째는 둘째를 보면서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고 예뻐해 준다. 유치원에서도 "나 동생 있어"라면서 그렇게 자랑을 한다고 한다. 동생이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서운한 건 서운한 것일 테다.
첫째가 느끼는 그 서운함이라는 건, 엄마가 걱정하고 맘 졸이며 아무리 애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했다. 오히려 엄마를 무려 20년 전으로 돌려보내 중간고사를 보게 할 정도로 내 불안만 더 키우는 것 같았다. 첫째의 보이지 않는 서운함을 해소하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첫째의 얼굴에 미소를 만들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첫째의 기분 전환을 위해 유치원 하원과 동시에 키즈카페로 향했다. 어떤 놀이든 상관없이 첫째가 하자는대로 다 놀아줬다. 이전에는 아이가 노는 동안 휴대폰도 치우고(원래는 키즈카페 가서도 늘 노트북 켜놓고 일하곤 했는데;) 아이의 표정과 말투, 행동 등에 더 신경 쓰고 손뼉 쳐주고 남은 에너지 한톨한톨 다 쓸어모아 격한 리액션으로 화답했다.
사실 첫째는 11월이 되도록 여전히 유치원 적응 중이다. 일단 유치원에 가기만 하면 잘 노는데 가는 데까지가 문제다. 유치원도 낯선데 동생까지 태어나선지, 작년까지만 해도 키즈카페에 가면, 엄마가 복도 테이블에 앉아서 유리문으로 지켜봐도 혼자서라도, 다른 친구들과도 잘 놀았다. 그러나 지금은 나랑 잠시도, 찰나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한다. 열 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 냅킨만 좀 가져오겠다고 해도 내 손 잡고 "같이 가겠다"며 헐레벌떡 나서곤 한다.
키즈카페 문 닫을 때까지, 세 시간 내리 놀고, 진짜 내일 모레 불혹을 앞에둔 나야말로 하얗게 불태웠다. 코로나 시국 임신으로 외출이 힘들었고 출산 뒤 조리원에 2주간 떨어져 있으면서 엄마랑은 밖에서 땀흘리며 논 게 참으로 오랜만이었던 아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모처럼 신나게 놀았던 첫째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나 보다. 서툰 젓가락질을 해가며 돈가스와 우동 먹방을 제대로 찍었고, 녀석은 집에 오는 내내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 목욕하기까지 최소 30분의 승강이가 벌어지는데, 이날만큼은 "네"하며 곧바로 욕실로 향했고, 침대 위에선 "등을 긁어달라"더니 약 5분 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어느새 침대 길이의 절반도 넘어설 만큼 훌쩍 자란 첫째다. ‘너도 동생만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언제 이렇게 컸니’ 첫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통통한 뺨에 입을 맞췄다. 목욕을 했는데도 땀냄새가 물큰 삼켜진다. 둘째만할땐 정수리에서도 고소한 내음이 나던 너였는데.
네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닌 "동생이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날을 기다려도 될까. 어쩌면 너의 첫 성장통에 네가 너무 힘들지만은 않기를. 이 순간을 잘 견뎌나가기를. 사랑하고 또 사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