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격리 시절 3
계획한 대로 일을 잘 해내는 사람들이 나는 참 존경스럽다. 나는 계획만 거창한 편이다. 전에는 일이 남았을 때 책이며 자료들을 몽땅 챙겨 가방에 넣고 퇴근했다가 다시 그대로 가방을 들고 출근해 사무실에서 마무리한 일도 허다했다.
이제 거의 무계획으로 살고 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게을러도 너무 게을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자격요건이 안 되어 서류접수조차 해 보지 못한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럴 상황에 직면하고 만 것이다.
본격적인 경쟁 이전에, 나는 아예 달리기의 출발선에도 서 보지 못하게 생긴 이 상황이 너무 생소하고 허탈하다. 벼락치기라도 해서 조건을 갖출 수 있다면 그럴 시도라도 해 볼까 하겠지만, 이미 늦었다. 상황이나 남 탓을 하기에는 지난 5년간의 성적표가 너무 초라하다. 민망해서, 동료들에게 하소연도 자존심도 세우지 못할 지경이다.
그래도, 완벽한 선수들만이 삶의 레이스에 올라 있는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굳이 위로는 해 본다. 메달권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 의미는 있는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한 마라톤이라서 다행.
다시 숨을 고르고, 운동화 끈을 매만져야 한다. 어느 새 2월,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는 단기 레이스의 출발선에 또 올라와 있다.
모든 실패의 경험들이 나름 그럴만한 상황이 있어서 해명이나 변명들이 가능은 하겠지만, 스무 살 이후 용두사미로 끝나고 만 여러 사건들은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위로나 반성은 좋지만 그 기억들이 나를 위해 정당화되거나 왜곡되어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말보다 글이 진중하기는 하겠지만 종종, 글도 함부로 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더더욱…)
겉으로만 번지르르 야무진 척은 다 해 왔지만, 돌아보면 꽤 굵직한 “용두사미” 계획과 실패한 결과들이 있었다. 살면서 해 본 생활 속의 실수들은 빼더라도 탈락의 고배는 20대보다는 30대에 더 경험해 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한 직장에 근무하거나 일에 몰두하기도 하던데 나는 그런 팔자는 아닌가 보다.
참, 작년에는 이력서를 세 번 내고 세 차례 모두 서류심사에서 탈락했지. 그런 일들 중 어느 하나의 결과가 달랐다면 지금 내 모습도 달라졌을 것이다.
의미가 없어 보이더라도 다소 절충된 계획을 세워보자. 우선 큰 계획과 작은 계획을 나무의 큰 기둥과 가지처럼 배치해 보고 그 때 그 때 정리해 가기. 네루다의 시 한 구절처럼, 우리가 생의 마지막에 기억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바로 그 자신의 인생뿐이니까.
올해는 몇 가지의 계획을 세워주기로 한다. 다시 새해를 맞는 마음, 음력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