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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쓱쓱 Oct 12. 2024

낯선 것의 기능

따릉이는 잘못이 없어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좋아한다. 익숙한 것들은 예측 가능하고 우리에게 일종의 안정감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안정감이란 생존의 문제이고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데 기본 베이스다. 그러니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면 삶이 불안해진다. 즉,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인간이 익숙한 것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실제 우리는 오히려 낯선 것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그 낯선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면 그 관심을 더욱 커진다. 의미를 통해 인간은 뭔가 다른 형태로 생각과 감정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확실히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확 잡아 끈다. 



 주말 이른 아침 을지로 3가는 한산했다. 평소엔 자주 가볼 일이 없는 곳인데 아침부터 부지런히 도착한 을지로는 5일 내내 분주했던 입김들이 아주 천천히 희석되고 있는 듯 루즈했다.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다 단박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바로 서울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따릉이의 바구니에 덩그러니 담긴 예쁜 꽃다발이었다. 

 꽃다발의 상태를 보아하니 밤새 찬기운을 맞아 꽃잎들의 가장자리가 까슬까슬하게 말라 있었다. 언뜻 보아도 꽤 정성을 들여 꽃다발을 만든 것 같았다. 


 자, 서울의 대표적인 업무지구, 연예인들이 여기저기 출몰하여 먹방을 찍어대는 맛집의 천국, 대한민국 대표 도시 안의 도시에서 따릉이의 바구니에 처박혀 있는 예쁜 꽃달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이 낯선 장면은 무엇보다 우리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한다. 

 꽃다발을 준비하면서 기대와 걱정으로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을 한 남자, 그리고 그 남자가 꽃다발을 주고 싶었던 한 여자, 혹은 그 반대?


 일단 어렵게 마음을 전했으나 이미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는 여자의 고백으로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던 남자, 그녀를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준비한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그녀에 대한 마음까지 버리는 것처럼 느껴져 주저했을 남자, (아니면 거리에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았거나, 하하) 그렇다고 그대로 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기는 너무나 비참했던 남자가 도시에 잡초처럼 아무 데나 있는 따릉이를 보는 순간 바구니에 처박고 떠났을 수도.


 아니면, 

 평소 과하게 관심을 보이거나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해 주던 남자가 살짝 불편했던 여자, 한 직장에서 한번 보고 말 사이도 아니고 매일매일 봐야 하는 사이에 괜히 불편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아 좋게 좋게 넘어갔던 여자, 남자에게 자기 딴에는 거부의 의사를 다방면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했던 여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길 여자에게 꽃다발을 강제로 안기고 도망가는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던 여자가 자신의 의사를 묵사발로 만들고 지가 하고 싶은 데로만 하는 남자에게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건 좀 아니다 싶어 옆에 있던 따릉이를 발견하고는 바구니에 살짝 넣어두고 떠났을 수도. 


 이렇게 더 많은 아니면, 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사실 더 결이 다른 여러 형태의 사연과 이야기가 계속 떠오르지만.., 딴 길로 빠질 수 있으니 여기서 그만하도록 하겠다. 끙.


 이처럼 낯선 장면은 확실히 우리에게 수많은 의미들과 상상거리를 제공한다. 즉, 확실히 낯선 것들은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토요일 이른 아침 도심 속 따릉이의 바구니 안의 시든 꽃다발은

 일상 속 낯선 것이 주는 상상과 의미의 기회다.

 다양한 형태의 생각과 감정을 발전시킬 수 있는 선물같은 기회인 것이다. 


 그러니 안전한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낯선 것을 잘 포착하기 위해 촉수를 길게 뻗기.

 그러다 새롭고 신기한, 전혀 다르고 낯선 것을 발견하면 그 의미를 끊임없이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보기.

 

 이것이 우리가 좀 더 삶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매우 쉽고 강력한 방법임을 잘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진짜 꽃다발의 사연은 뭘까? 진심 너무너무 궁금하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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