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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가 믿음을 줍니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자기 확신.

by 쓱쓱

팩트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한다.

팩트를 기반으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방대한 데이터와 상상 이상의 똑똑한 AI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철저히 분석하여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 팩트를 제시한다고 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가장 신뢰할만한 정보를 조합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것은 팩트고 가장 믿을 만하다고 한다.


자, 그런데 진정 믿음이 팩트를 기반으로 생기는 걸까?




갑자기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잘린 아버지가 아이들을 앉혀놓고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얘들아, 아빠가 갑자기 회사에서 잘려서 백수가 되었단다. 근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빠가 야심 차게 투자했던 회사가 폭삭 망하면서 투자했던 돈을 다 날리게 되었지. 여기 까지라면 그래도 어떻게 해 볼만 한데, 하필이면 투자를 위해 대출을 꽤 많이 받았는데.., 대출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면 우리 집까지 압류될지도 몰라. 왜 있잖아, 드라마 같은 데서 흔히 쫄딱 망한 집에 빨간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잖아. 현재 그렇게 될 가능성이 거의 98% 정도야.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나게 되고 가족들은 거의 100% 확률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야 할 거야. 힘든 시간이 시작될 거야 반드시.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가 어떻게 해서든지 잘 해결해 볼게. 아빠 믿지?"


모든 팩트를 낱낱이 정확하게 전달하고 미래에 예상되는 점을 철저하게 현재의 데이터 기반으로 제시하면 과연 아이들은 아버지를 믿을 수 있을까?

꼼꼼한 현실과 증거를 기반으로 팩트를 제공했다고 아이들이 안정감을 누리며 아빠가 이 어려운 상황을 잘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물론 팩트가 얼마 간의 믿음을 형성해 주는 요소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판단이나 선택을 할 때 과거의 수많은 데이터와 경험치를 선택의 기반으로 사용한다. 매우 전략이고 또 효율적인 생존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은 이러한 데이터와 팩트를 뛰어넘어 오감으로 확인할 수 없는 그 너머의 영역에 닿을 수 있도록 해주는 인간이 가진 몇 안 되는 고차원적 정신 활동이다.


즉, 나는 믿음이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실재한다고 스스로에게 확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감으로 확인했을 때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자기 확신. 그리고 그 확신이 결국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당연히 막연하고 대책 없는 낙관주의는 엄격한 경계의 대상이다. 그 어떤 준비도, 대안도 없이 무턱대고 잘 될 것이라는 터무니없고 실속 없는 믿음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불행의 쓰나미에 휘말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 또는 대상에 대해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기 위해 반드시 팩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팩트는 상황과 대상에 대한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보이지 않는 가능성에 미련하게 점착되는 일이다. 오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팩트는 비록 네거티브를 외친다고 할지라도 믿음의 오감은 그러한 팩트 너머의 더 넓은 영역으로 뻗어나간다.


어쩌면 결국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믿음의 근거가 대상에게 있다기보다 바로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상황에 대한 팩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 대한 내가 갖은 자기 확신, 즉 믿음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 너무 팩트만을 들이밀지 말자. 아무리 팩트를 외쳐도 믿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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