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단상_매(일)뭐(라도)쓰(기) 프로젝트_7월_24일차
내가 애정하는 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미안하다’에서 마지막 끝에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썼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고 결국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게 만든 것이 모두 자신의 사랑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이 얼마나 맑고 선한 마음인가.
그런데 나는 왠지 사랑하는 것보다 받은 사랑에 응해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 더 미안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벼르고 또 벼르며 어렵게 전달했을 그 마음에 같은 마음으로 응답해 줄 수 없을 때 그 미안함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대학생 시절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던 그는 무척 성실한 청년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친한 형 가게에서 일을 돕던 그는 태도가 좋았다.
무슨 일이든 솔선수범했고 매사 진지하게 생각한 후 행동했다.
고작 두 달이 채 안된 단기 아르바이트였지만 가게를 아지트 삼아 매일 모이던 그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그렇게 인연의 끈이 두꺼워졌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입사할 때까지 그와는 좋은 인연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입사를 축하한다며 건넨 선물과 함께 그의 마음을 전달받았다.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이내 걱정이 됐다가 결국 미안했다.
소중한 인연을 잃고 싶지 않다는 나의 욕심 때문에 그의 눈을 보고 그 즉시 말해주지 못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순전히 나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사실 그와 동일한 마음으로 응해주지 못하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마음이 안타까워서 그저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그에게 메일을 썼다.
얼굴을 보는 것도 목소리를 듣는 것도 자신이 없어서 단어와 문장을 고르고 또 고르며 메일을 썼다.
나의 글이 조금이라도 그에게 덜 상처가 되길 바라며 문장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장시간 고민하며 쓴 많은 문장들은 결국 마지막엔 대부분 삭제되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문장의 메시지는 의외로 심플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누구보다 더 미안한 마음을 전했던 참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