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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쓱쓱 Sep 11. 2024

시절 인연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나는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물론 인연의 시작과 끝도 결국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리 곁에 두고 싶은 인연이라도 때가 이르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을 수 있고 

 이미 이뤄졌다 하더라도 그 기한이 다하면 끝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과 관계에 대해서도 아주 조금의 공간은 항상 마련해 두는 편이다. 

 그래야 인연의 어떠한 때가 이르렀을 때 들어오고 나감으로 인한 타격감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실에 대한 손상감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너무 딱 맞거나 꽉 낀 상태는 영혼이 드나들 틈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가득함 사이로 영혼의 바람이 드나들 수 있어야 마음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관계 안에서 나도, 그도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인연은 여기 까지지,라고 떠올리면 결국엔 수긍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허전함과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떠나보낸 후 텅 빈 마음을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어 허둥대기도 하고 

 차근차근 조여 오는 슬픔으로 인해 심장을 잠시 떼어내고 싶을 만큼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국 헤어질 인연이었다면 힘겹더라도 받아들이는 편이다. 

 삶의 어떤 영역은 인간의 통제 밖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대신,

 인연이 남긴 그 모든 시간과 기억을 마지막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그 시절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과 그 순간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과 그 감정들로 인해 내가 그토록 뜨겁게 살아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결국 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건 어떤 특정한 존재라기보다는 그 존재와 함께 했던 순간의 기억과 그것을 몸으로 체험한 생생한 느낌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느낌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곁을 내어주고 서로의 영역을 탐험하며 함께하려 애쓰는 것이 아닐까. 


 한 여름밤처럼 뜨겁고 달끈했던 첫사랑이 먼 타국으로 떠나갔을 때,

 20년 가까이 회사에서 알고 지냈던 상사가 어느 날 더 이상 회사에 존재하지 않을 때,

 평생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부모님의 마지막을 꺼이꺼이 부여잡고 있을 때,


 시절과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그 시절 우리에게 왔던 고마운 인연들과

 시절이 다 차 우리에게서 떠나간 소중한 인연들을.


 그렇다면 이 운명이라면 운명일 수밖에 없는 인연의 테두리 안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지금 나와 맺어진 소중한 인연들에게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다하는 것.

 

 그래서 시절 인연의 기능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게 하는 것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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