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과에서 암환자등록을 하고 병원을 나오니 저녁시간이 다되었다. 저녁을 먹어야지 하는 말에 엄마는 아무거나 먹자, 너 좋아하는 걸로 먹자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국물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가끔 가던 미역국정식을 하는 곳으로 간다고 했다. 팔당호 주변도로를 지나 식당으로 가는 길은 불과 석 달 전까지 나의 출퇴근길이었다.
“아버지가 이 근처로 오니 내가 이사 나왔네.”
“그렇네.”
“이쪽은 올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벌써 몇 번째 지나가네.”
이미 어둑해진 호수는 별다른 풍광을 보여주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 듯했다.
흐르지 않는 물길처럼...
대형 쇼핑센터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에스컬레이터로 1층으로 올라왔다. 에스컬레이터를 잘 타실까 싶은 마음에 지켜보니 별문제 없이 올라서는 모습이다. 평일이라 사람이 북적이지 않아 널찍한 공간이 오히려 편하게 다가왔다. 종업원이 입구 쪽 자리를 권했지만,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제일 안쪽 자리에 앉은 후 주문을 했다.
“나는 이렇게 구석에 있는 자리가 편하다.”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말을 했다.
“아까 그 자리는 너무 입구라서 안쪽으로 달라했지. 나도 이런 데가 좋아”
정갈한 반찬 몇 가지와 생선 튀김을 곁들인 미역국이 뚝배기 한가득 나왔다. 엄마는 나물반찬과 국을 계속 드시고 밥은 드시지 않았다.
“나는 며칠 전부터 미역국이 생각났는데, 엄마는 밥은 안 드시네.”
“너네 아버지는 국물을 먹고, 나는 건더기를 주로 먹었다. 옛날부터 난 국물은 별로 안 먹어.”
아버지가 국물을 좋아했다는 것은 알았는데 엄마가 그랬다는 것은 나는 몰랐었다.
엄마는 배추 겉절이를 드시고는 말을 이어가셨다.
“내가 익은 김치보다 생김치를 좋아했잖니. 너네 아버지는 익은 김치를 먹었고..”
식사를 하면서 엄마와 아버지가 어떻게 식성이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떤 것은 내가 알고 있었고, 어떤 것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고, 어떤 부분은 내가 반대로 알고 있는 것도 있었다. 엄마와 나의 기억이 엇갈리거나 그 둘 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맞고 틀리고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커다란 뚝배기에 가득 찼던 미역국은 국물 몇 술 정도 남기고 깨끗하게 비웠다. 어느덧 옆 테이블에도 손님이 들어섰다. 유치원 정도 다닐까 싶은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 둘이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이려고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나와 엄마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뭘 어떻게 해? 열흘 이상 비우면 요양원 퇴소해야 한단다. 너무 멀어서 이렇게 다니기도 힘드니 일단 서울 요양병원을 알아봐야지. 골목 맨 앞에 사는 신씨네 할머니는 전철역 근처 요양병원에 있는데 며느리가 가서 목욕시킨다고 하더라.”
“그럼 엄마는 아버지 치료는 안 할 거야?”
“몸이 저런데 치료가 되겠니? ”
말은 이렇게 해도 엄마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엄마 결정이 제일 중요해! 애들한테 물어보고 의견을 구하긴 하겠지만...
저녁 먹었으니, 막내네로 가서 오늘 의사 얘기해보고 셋째 의견도 물어보고 그러자. “
미사리 강변을 거쳐 막내와 내가 사는 곳으로 가는데 어느 다리를 건너냐고 엄마가 물었다. 다리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내비가 알려주는 대로 가는 거야 라고 답을 했다. 엄마는 자꾸 다리 이름을 말하는데 순서가 뒤섞이는 듯했다.
“엄마는 아버지 그냥 요양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어? 대학병원 같은데 안 가고?”
“어디 좋은 병원이 있니? 돈이 많이 들 거잖아.”
옆 단지 아파트에 사는 동생네로 가서 차를 마시면서 의사로부터 들은 말을 전했다. 저녁을 먹었는데도 엄마는 병원에서보다 더 구부러진 듯 보였다. 막내 동생은 엄마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치료를 받느라 고생하다가 가시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견도 덧붙이고, 엄마 집 근처에 있는 요양병원도 알아보겠다 했다. 셋째와 스피커 폰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좀 더 알아본 후에 결정하자고 했다.
차 한잔 마시고 일어나 친정집으로 가는 길을 운전하며 엄마에게 다시 물어보려다가 과연 이 중요한 의사결정의 중심에 엄마를 놓는 것이 맞을까 하는 질문이 올라왔다.
12년이나 간병을 하며 지낸 엄마의 지친 마음과 아버지의 몸 상태로 본다면 치료를 결정하는 것은 무리수이나,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 알게 된 엄마의 내면에는 항상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는 오래된 기억이 올라왔다.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래전 초등학교 친구 모임을 다녀온 엄마가 했던 말이다.
“몇십 년 만에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어. 여자들만 여덟이 있었는데, 나만 남편이 멀쩡하게 있더라. 호랑이띠 팔자가 사납다더니 정말 그런 건지. 난 참 다행이더라.”
그때는 아버지도 건강했고 엄마 허리도 구부러지지 않았을 때다.
친정집 골목 앞에 차를 세우고 엄마가 계단을 올라가고, 현관 앞에서 뒤돌아 손을 흔드는 것 까지 지켜보고 돌아 나왔다. 긴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만 있었다.
지난 12년간 아버지의 간병은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었고, 나는 일정 거리를 두고 대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모셔야 한다고 진작부터 말은 나왔었지만, 아버지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엄마는 손수 돌보고 계셨었다.
친정집 아래층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쌓아둔 박스더미에 불이 붙어 보일러가 타고 벽면이 그슬러 지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엄마의 생일모임 때 가족회의가 있었다. 집을 다시 지어야 할 것 같은데, 6개월쯤 걸리는 기간 동안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시자는 결정을 했고 비용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후에 아버지는 요양원으로 모셨고, 집을 새로 짓는 문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단되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러간 것이다.
가족 모임을 하기 전에 엄마는 전화로 꿈 이야기를 했었다.
새벽에 꿈을 꿨는데 용이 한 마리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볼을 비벼대는 거야.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귀엽게 생긴 사슴 형상이더라. 그러고는 주변을 한 바퀴 돌고 하늘로 올라갔다. 암만해도 너희 아버지가 오래는 못 사실 것 같다.
나도 그럴 것 같았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었다. 이제 현실로 다가서는가 보다 싶었다. 멍하던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남편이 의사인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문을 구함. 통화 가능한가요?
바로 전화가 왔다. 의사 만났던 이야기를 하고 몇 가지를 남편에게 물어봐 달라 했다.
1. 내시경 검사 결과 대장암 진단 나왔는데 5센티 사이즈는 어느 정도 상태인가?
2. 대학병원으로 옮기면 현재의 몸 상태에서 치료가 가능할까?
항문외과 전공하는 선배에게 물어본다며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직접 통화를 했다. 정확한 진단은 검사 결과를 보고 환자의 상태를 알아야 말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참고 정도라는 전제를 달고 이야기를 했다.
1. 5센티는 큰 편이다. 전이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기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2. 치료는 나중 문제이고, 검사과정에서 힘들 수도 있다. 소화기 상태가 안 좋고 식사도 안 되는 상태에서는 일반적인 검사 과정을 진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3. 지금 폐렴으로 입원했다는데 만약 수술을 하게 된다면 폐가 마취를 감당할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걱정이 많으시겠다는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다.
늦은 시간이지만 커피를 내리고 다시 창밖을 내다보며 오고 가는 차량 행렬 불빛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참 많이도 지나간다. 저렇게 오고 가는 이 많은 사람들의 행렬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그렇게 한동안 바라보다가 불현듯 아들애와 나누었던 나의 장례식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들아..
난 말이야 음... 살만큼 살았다 싶었을 때 떠나가는 시점을 정하면 좋겠어. 심하게 아픔을 겪거나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잊어버린 상태로 맞이하고 싶지는 않아.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떠나면 어떨까 싶다. 그게 결정이 되면 가족들을 만나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주변정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때가 되면 홀가분하게 가는 거야. 미리 하는 장례식이라고 볼 수 있겠지. “
“엄마, 너무 앞서가는 것 같아.”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했던 말이었다. 아니 주변에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평소에 가졌던 생각을 그냥 꺼낸 거였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별로서 죽음을 대하면 어떠한가?
병원에서 봤던 아버지의 고운 모습이 평소의 이런 내 생각들을 발자국 현실로 잡아당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아버지의 이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직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며 상황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되 가능한 아름다운 이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과정을 지켜보기로 작정했다. 나도 그렇지만, 특히 아버지가 기억이 더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삶이 과연 아버지의 삶일까?
내일 가족회의에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는 결정을 하고, 그것과는 별개로 나와 아버지의 이별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로 생각이 흘러갔다. 다음날 출근해야 함에도 이런저런 지난 이야깃거리들이 주변을 맴돌며 밤늦도록 생각에 잠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