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부터 프랑스어를 배우고, 파리에서 어학원에 다니고 대학원에 다니면서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프랑스어를 배우기 전에 종종 나는 이 새로운 언어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하고는 하는데 크로와상을 살 때를 제외하고는 그런 순간은거의 없다. (프랑스어로 크로와상을 빵집에서 사는 건 1분만 배우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말은 감사합니다(Merci)와 안녕하세요(bonjour)이다. Merci도 메르시가 아니라 목구멍을 긁는 소리를 분명하게 내어야 하고 메르- 부분을 강조해서 조금 길게 말해야 자연스럽게 들린다. Bonjour는 한국어로 말할 때보다 5계음 정도는 높게 내어야 현지인들이랑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높은 음표의 인사가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프랑스어를 말하는 나는 윈도 95
컴퓨터 운영체제 iOS 15와 Windows 11이 나오는 시대에, 프랑스어를 말하는 순간이면 나는 윈도 95가 깔린 컴퓨터 같다고 느낀다. 예상처럼 대화가 흘러가지 않을 때 이해하기까지 참 오래 걸린다(어제는 20일에 생일파티에 놀러 오라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한국어로 머릿속에서 생각한 말을 프랑스어로 표현하고 싶을 때는 너무 답답하다. 반응속도가 매우 느리다. 어떤 말은 버퍼링이 오래 걸리고 또는 랙이 걸려서 스스로 시스템 종료를 하고 싶을 때가 많다.
왜 이렇게 답답한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내가 여러 표현들 중의 최적의 하나를 고민하고 고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가 Merci라는 건 누구나 바로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고 바로 말하면 된다.
하지만 친구가 놀러 가자고 말할 때 좋다고 말할 때 여러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Super, c'est top, Nickel, Parfait, Sympa, Cool, Génial... 등등. 나는 이런 표현 중에서 가장 상황에 맞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프랑스어로는 세세한 뉘앙스까지 모르니 대충 좋다는 표현을 말해서 돌려쓰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표현이 필요한 이유는(영미권에서 마찬가지고 프랑스도 같을 터인데) 언어 표현을 중복되게 쓰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문화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표현을 다채롭게 쓰도록 매일 연습해야 한다.
고맙다고 말할 때도 감사합니다(Merci), 정말 감사합니다(Merci beaucoup), 당신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Je vous suis reconnaîsante), 천 번 감사합니다(Merci mille fois), 너에게 곧 은혜를 갚을게(Je te revaudrai bientôt)를 말한다.
외국어로 마음을 표현하는 3가지 방법- 눈으로 말하기, 관찰하기, 용감해지기
외국어를 배우든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든 나와 다른 언어의 규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쉽지 않은 과정이다. 때로는 아는 말인데도 정확히 기억이 안나기도 한다. 연습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자연스럽지 않은 과정이다.
언젠가는 지금보다는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말하겠지만 중간 과정을 견디는 일은 쉽지 않다. 느린 운영체제의 컴퓨터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그래서 중간 단계에서 조금 더 쉽게 말하기 위해 내가 쓰는 방법은 비언어적 소통이다. 마스크를 썼지만 눈은 서로 볼 수 있으니,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 비언어적 표현이 의사소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0%가 넘는다.
미래의 내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말하려면, 인풋을 늘려야 한다. 다양한 상황에서 서로 대화하는 법을 간접적으로 미리 아는 것은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겠지만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를 활용해도 좋다. 특히 글로 써져있기 때문에 복습하기 좋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발견한 방법은 소셜 미디어(인스타그램, 트위터를 추천한다)에서 원어민들끼리 대화하는 것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언어는 상호작용이므로 적절한 상황과 문맥에 말하는 방법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논문을 다 쓰고 심사를 앞둔 사람에게 격려와 축하하는 말도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축하해(Bravo, Félicitations!) 너는 자격이 있어(Tu le mérites!) 등을 댓글에서 볼 수 있다.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올 때 이런 표현들 중에 하나를 쓰면 된다.
언어를 자연스럽게 쓴다는 것을 실제로 말하고 조금 실수하면서 계속 나아지는 실패의 과정을 전제한다. 실수를 두려워할수록 내가 다음번에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게 된다. 그러니까 용감해지자. 프랑스인이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외국인이니까 일단 문법이 틀리겠지만 먼저 말하고 본다(어제도 배송오류로 일주일 넘게 기다렸던 온라인 쇼핑몰에 전화하고서는 나는 외국인이니 프랑스어를 잘 못한다고 미리 말했다)
실수를 조금 더 줄이기 위해서는 상황을 상상해서 혼자 역할놀이를 하는 것도 좋다. 책으로 공부할 때 눈으로 아는 단어와 실제로 상대랑 대화할 때 내가 말할 수 있는 어휘량의 차이는 현저하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표현이 진짜 나의 언어이다. 하지만 전혀 빨리 말할 필요가 없다. 나만의 속도로 차분하게 말하는 편이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느긋하게 안녕(Au revoir)이라고 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만의 속도로 가자.
정리하자면, 언어를 잘하기까지는 자연스럽지 않은 중간단계를 버티는 것이 필요하다.
1. 비언어적 표현을 사용하자. 웃으면서 대화하면 훨씬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2. 언어의 인풋 - 원어민들의 상호작용을 배운다. 영화, TV 프로그램, 인스타그램,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어떤 표현을 주고받는지 관찰하고 정리한다.
3. 언어의 아웃풋 -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말한다. 혼자서는 상황을 상상해서 역할놀이를 말한다.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아마도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외국인과 연애를 추천한다지만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가 더 효과적인 것 같다.
외국어로 말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매번 어색함을 알고도 낯선 언어랄 자기답게 말하는 용기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