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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B Mar 11. 2022

우리는 우리의 속도로 가는거야

친구가 알려준 철학 석사의 장점

뒤늦게 외국 대학에서 석사를 하는 것의 한 가지 장점은 내 나이보다 어리게 봐준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아이처럼 서툴고 어색해진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새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므로 프랑스 어른들이 사는 사회와 다른 것을 보고 느낀다. 프랑스에서의 나는 5살짜리 어린이가 행동하는 것보다 어떨 때는 더 미숙한 것 같다.


친구는 소르본 4대학에서 석사 1년차를 끝내고 파리 낭테르에서 석사 2년차를 다니고 있다.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2년과정이지만 석사과정 등록을 매년 해야한다. 그래서 가끔 석사 1년차에 다닌 대학과 다른 대학에 석사 2년차로 지원할 수 있다. 이 친구는 현상학에 관심이 많고 프랑스 현상학자인 메를로-퐁티에 대해 논문을 쓸 예정이다.


우리는 낭테르의 장점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작년에 파리 팡테온 소르본(파리 1대학)에 과학철학 석사 2년차 과정을 수료했지만 졸업은 하지 못한 나도 마찬가지고, 친구도 낭테르의 분위기가 훨씬 연대적(solidaire)이라고 느낀다. 친구들끼리 서로 도와주고 끌어주는 게 당연하다. 외국인이라서 나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닐까 싶었는데 프랑스인인 친구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2020년에 내가 입학한 파리 1대학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9월 개강이후 한달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수업을 줌을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가뜩이나 이해하기 힘든 과학철학(철학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나는 과학철학의  분석철학적 접근이 여전히 생소하다)인데 이걸 온라인으로 들으려니 질문하기도 쉽지 않았다. 대면수업에서는 프랑스어로 여러 명 앞에서 질문하는 게 쑥스러워서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선생님에게 직접 질문하는 편이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같은 과목을 듣는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도 반갑지 않았다.


온라인 수업은 집중하기도 힘들었고 교수님들, 학생들과 상호작용할 일이 물리적으로 없으니 배우는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 그리고 1대학 소르본의 분위기는 이 곳보다는 다소 딱딱했다. 학생들끼리 서로 돕기보다는 알아서 잘해나가니 도움을 요청하기도 조금 껄끄러웠으며, 고풍스럽고 크고 엄숙한 분위기의 교실에서는 선생님과 학생의 자유로운 토론이 별로 없었다. 낭테르에서는 선생님과 학생이 더 가깝게 마주하며 서로 활발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친구는 나처럼 조금 느린 속도로 공부중이다.  대학원생이면서 생계를 해결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철학과 석사를 따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법학 석사를 따는 것, 정확히 말해 법학 자격시험(로스쿨)을 통과하는 것은 5번 정도의 기회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끝이다. 하지만 철학과 석사는 몇 번이고 도전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 분야에 횟수를 정해놓지는 않았다. 느리지만 해내면 된다고 말해주는 친구 덕분에 소소하게 웃을 수 있었다. 


나는 낭테르 대학에서 친구들이든 교수님들에게든, 작년에 실패하고 올해 다시 도전중이라고 말한다. 친구는 프랑스어로 철학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내가 용기있다고 말해주었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친구의 말 한마디로 나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친구가 말해준 철학과 석사의 장점은 두고두고 내게 용기를 줄 것 같다. 이번 한 번에 멋있게 가지 못하더라도, 중에 포기하지 않고 걸으면 된다.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용기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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