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정말 실재하는 병일까?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겪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심지어 정신과에서 우울증 판정을 받은 나도 나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내가 힘든 일을 앞두고서 힘에 부친 나머지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가 나를 속이는 중이 아닐까? 심지어 환자 본인도 이러한 생각이 드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바라보는 것을 막을 길은 없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움직이지 않고 느려지고 기분상태가 저하돼서 자꾸 할 수 없다고 되니이니 말이다.
우울증의 시작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늘 불안감이 높은 아이였던 것 같다. 예민한 기질에 갑자기 닥친 사건에 트라우마가 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활에 가끔 불편함을 느껴도 몇 주 동안 움직일 수 없었던 순간은 없었다.
내게 우울증의 시작을 알린 것은 나의 정신상태나 감정이 아니라 신체였다. 내가 정신과를 찾아야겠다고 느낀 순간들의 증상은 다음과 같았다.
- 힘이 없다.
-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 일어나려고 해도 몸이 너무 무겁고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 설거지, 주변 청소의 간단한 집안일을 해낼 수가 없었다.
- 식욕이 사라졌다.
-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다
- 삶의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상실한 것 같았다. 내 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생각하는 능력, 모든 것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글쓰기나 간단한 일상의 일들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시작할 에너지가 없고 식욕이 없는 탓에 버텨보려고 억지로 먹어봐도 소화도 안됐다. 하루하루 견디는 것이 매우 힘들어서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것도 전처럼 좋아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삶은 텅 비어버렸다.
우울증을 스스로 이겨보려 찾아본 책을 보면서 우울증을 이해해보았다. 내가 의미를 부여한 것이 의미 없다고 느껴질 때. 그리고 슬픔보다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우울증의 주요한 감정상태였다. 내가 느낀 바로는 우울한 감정과 우울증은 정말 천지차이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뇌를 영상 촬영하면 치매 환자들의 뇌보다도 활동이 저하되어있었다. 내가 계획한 일들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음은 당연해 보였다. 내 신체의 활동이 느려지고 정신이 멈추는 병이 우울증이었다.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자율신경계가 무너져있었다. 내 사고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자꾸 흐르는 이유였다. 이유를 알아도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내 마음의 문을 닫았고 세상과 연결하려는 사회적 에너지도 쓸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마저 연락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나아질 용기를 먹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잃어버린 나를 일부라도 찾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