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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의 담소 Oct 14. 2024

나의 치사랑

태어나 제일 사랑했던 사람에게

 종종 아이들이 부모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줘서, 이런 존재가 어떻게 세상에 있어주는지 감동하시는 분들을 보았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가 있다’는 말이 있지만, 때론 무조건적인 사랑을 자식에게서 받을 때도 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했다. 엄마가 약속을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올 때면, 졸음을 떨쳐가며 기다렸다. 긴 기다림 끝에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달려가 마중을 나갔다. 이사를 가는 날이나 친구들과 여행을 가셔서 며칠 밤을 볼 수 없는 날이면, 엄마의 사진을 꼭 끌어안고 전화 통화를 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머리가 좀 커서 중학생 때, 치마길이를 줄이거나 화장을 하며 어울리자는 친구들의 유혹을 모두 뿌리쳤다. 이유는 나마저 엄마의 속을 썩게 할 수 없어서였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엄마에게 주려고 했고, 좋은 곳에 가면 꼭 보여드리고 싶어 했다. 엄마가 힘든 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부모역할도 남편역할도 자식역할도 해내고 싶었다. 엄마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만약 나의 수명을 떼어서 엄마에게 젊음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내어주고 싶었다.


 사랑이 나중에는 당연한 권리가 되어서일까.. 엄마와 싸우면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 엄마의 기분이 좋아질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 생각했다. 아빠가 종종 집에 오면, 둘 사이의 불편한 기류에 꼭 오빠가 아닌 나를 집에 두었다. 그것에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다 교회 세례까지 놓쳐도 말이다. 엄마를 정말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 히스테리 부릴 수 있는 이유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 시절 엄마는 나에게 많은 히스테리를 부리셨고, 나중에 후회하시며 사과도 하셨다.

 

 그러나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나이가 들어도 나를 자라지 못하게 했다. 나는 이제 성인인 만 28살이지만, 아직도 10년 전에 붙잡혀 자라지 못한 기분이다.




Dear. mom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내가 태어나 세상을 마주하여, 나를 보호하고 나를 키우기 위해 희생하는 존재. 사랑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으며, 사실 나의 사랑에 이유 따위는 붙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나의 생을 떼어 당신에게 젊음과 다시 인생을 살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기꺼이 다 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한때 그토록 미워하던 나의 성씨 집안. 당신이 그리도 그게 밉다 하여, 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피를 다 뽑아 말라죽고도 싶었습니다.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라면, 당신의 부모라도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나중에 나의 아이가 태어나도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것만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 감히 의문이 들정도로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믿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때의 제 마음은 진실했으니까요.


저의 치사랑이 어느 순간부턴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당신도 인지하게 되었을 때 저에게 자유롭게 살라하셨지만. 새장에 같인 새에게 날아가 살라고 하시니,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야 할지 갈피도 못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당신이 만든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이제는 저 자신을 좀 사랑해보려고 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원하던 것처럼 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습니다.


사랑의 형태는 변하였을지언정, 여전히 사랑합니다.

힘든 시절 같이 겪으면서, 저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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