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정
엄마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며 자신의 위신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혼한 사실을 직장 동료는 아무도 몰랐으며, 내가 성인이 된 후 같이 해외여행을 갈 때도 여행 중 알게 된 사람들에게 '아빠는 일 때문에 같이 못 왔어요'라고 둘러대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 가끔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엄마가 짊어진 무게가 상당했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는 직장에서 일에 치이고, 업무에 치이고 집에 오면 집안일을 해야 했다. 청소와 설거지는 최대한 도와드렸으나 빨래 같은 일은 엄마가 하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식의 교육문제도 상의할 사람 없이 혼자 해결해야 했고, 다달이 나가는 생활비에 늘 머리 아파하셨다.
이혼 후 가정형편까지 어려워지자, 엄마는 많이 힘들어하셨다. 믿고 의지할만한 부모는 엄마에게는 없었으며, 남편은 떠났고 자식들은 어렸다. 엄마가 심적으로 의지하고, 스트레스를 풀만한 탈출구는 돌이켜보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엄마가 히스테리를 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오로지 편하다는 이유로 딸인 나에게 대다수 행해진 것은 옳은 일은 아니다. 다만 엄마가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게다가 히스테리가 매일 같이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빈도가 잦지는 않지만 강도가 조금 셀 뿐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우리가 힘들었던 시절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은 '남편복이 없으면 자식복도 없다더니'이다. 이 말은 주로 나와 싸울 적에 많이 하던 말이었는데, 이 말을 들을 때면 가끔 억울했다. 그러면서도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부부가 둘이서 키워도 힘든 육아와 가장 역할까지 홀로 하셨으니, 가끔 저런 말을 내뱉어도 나는 엄마가 입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엄마가 오빠와 나의 양육권을 가져가 키워주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지금과는 더 비교도 안되게 불행했을 것이라는 걸 안다. 이것이야 말로 엄마가 나에게 해준 진정한 희생이며, 엄마가 나에게 한 히스테리를 참을 수 있는 이유였다.
굳이 이혼'녀'로, 여자에 한해서 말하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홀로 키워내며 가장의 역할을 해내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삶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인과의 만남도 여행도 하다못해 자신만의 휴식시간 마저 가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엄마의 말엔 최대한 복종하고자 했다. 물론 나도 사춘기 학생이다 보니, 말을 안들을 때도 있긴 했다. 그래도 엄마가 나중에 말하시길, "그 시절 네가 엇나가지 않고 도와주지 않았다면 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그리고 그때 엄마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안해.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 고맙고 미안해."
가족 모두가 나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는 중이었기에, 사실 미성년자인 나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한마디 말을 전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상처 준 모두를 이해하면서, 네가 너 스스로 돌보지 못하며 자신을 방치했지만.. 그 덕분에 그 시절을 엄마는 나름 잘 견뎌낼 수 있었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네가 제일 사랑하던 사람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