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합니다
오늘이 딱 재활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암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암 때문에 배운 것도 많다.
처음 암 선고를 들었을 때
정말 고통스럽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스러웠지만
암보다도 일상을 가로막는 것이 생기니
암은 그냥 덩어리일 뿐이다.
암과 싸우는 건 잠시 미뤄두고
걷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쩌면 암과 함께 해야 할지도 모른다.
원하지 않는 동행이지만
우리에게 큰 아픔을 주지 않는다면
기꺼이 함께 할 의향이 있다.
오빠와 나는
9년 반의 시간을 함께 했다.
5년은 아프지 않았고
4년은 아팠고
반년은 많이 아팠다.
많이 아픈 지금,
우리는 제일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아프지 않았던 5년,
별것도 아닌 사소한 걸로
서로를 속상하게 하기도
힘들게 한 적도 많다.
아팠던 4년,
아프지 않은 나날의 감사함을 알게 되었고
싸움도 현저히 줄었다.
몸을 챙기게 되었다.
많이 아픈 반년, 현재,
우리는 삶의 의미를 배워가고 있다.
어쩌면 행복을 더 자주 느낀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았던 5년, 남들과 같았던 시기에는
"아, 이런 게 행복이지"
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해외여행을 가고 값비싼 물건을 사야만 잠시 행복했다.
둘 다 매일매일 같은 일상이 심심했고 지루했다.
"뭐 재밌는 거 없나"를 입에 달고 살았다.
더 재밌고 자극적인 걸 찾았다.
술도 점점 도수 높은 술,
음식도 점점 맵고 자극적인 음식,
자극을 행복으로 착각했었다.
아팠던 4년,
어쩌면 그때부터 행복을 조금씩 배워갔던 것 같다.
우리가 행복한 순간은
월급이 오르거나 승진했을 때가 아니었다.
3개월마다 하는 정기 검사에서 이상이 없을 때,
항암약이 몸에 맞아 암의 크기가 줄어들 때,
수술이 잘 되었을 때,
아프지 않았으면 겪었을 일들이
남들과 비슷해질 때 행복을 느꼈다.
당연한 줄 알았던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당연한 걸 되찾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당연한 걸 되찾지 못하더라도
우리만의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반년,
오빠가 많이 아프고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
오빠가 눈을 떴을 때 행복했고,
오빠가 말을 했을 때 행복했고,
오빠가 내가 사 온 도너츠를 먹었을 때 행복했다.
요즘의 행복은,
오빠의 기저귀가 새지 않았을 때,
오빠가 간식을 달라고 했을 때,
오빠가 고맙다고 표현할 때,
우리의 행복은
점점 더 소박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더! 더! 더!
자극을 원했던
무탈했던 지난날,
무탈함의 소중함을 모르고
무료함을 지루하게 생각한 나날들,
이제는
정말 작고 사소한 것도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살고 있다.
늘 행복을 갈망하던 나는
병실에 오고 나서야 행복을 마주쳤다.
오늘의 가장 행복한 일은
오빠가 처음으로 산책을 가자고 한 것이다,
예전에는 산책 가자고 하면 귀찮기만 했는데
오늘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이렇듯 행복은
힘든 상황에서 더 자주 마주치고
무탈한 상황에서는 잠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행복한 일은 늘 있으며
내 마음에 따라 느낄 수 있느냐이다.
나의 글 들이
무료한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소중함을
투병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기적의 가능성을
보호자들에게는 응원을
선물해줬으면 좋겠다.
글을 다 마무리 짓고 오빠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오빠가 어떻게 알고 내 글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래서 오빠에게도 몇 마디 전하고 싶다.
사랑하는 오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고
지금도 고생 많고
앞으로도 고생 많겠지만
내 옆에서 오래 있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꼭 하고 싶어.
내가 좋아서 함께 하는 거니까
앞으로도 함께 잘해보자 우리
우리 지금도 기적이니까
앞으로도 기적 많이 만들어보자.
나 사랑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그리고 그럴 일 없겠지만
혹시나 지금보다 더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늘 오빠 편에 서서
언제나 함께 할 거니까
든든하게 지켜줄테니까
걱정 마.
사랑해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