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1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한동안.
내게 글쓰기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려 찬찬히 걸어 가보는 일이 아니었다. 받을 채무가 있는 것처럼 급하거나 다소 격앙된 상태에서 끓어오르는 불덩어리를 빠르게 퍼내는 일에 가까웠다. 늘 스펙터클 하다 믿었던 내 삶, 아니 별일 아닌 일을 스펙터클 하게 받아들이는 습관이 있는 내게 무언가 이렇다 할 일조차 없으니 글도 써지지 않았다. 보통은 그런 이유에서 글을 쉬게 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엔 그 이유가 좀 달랐다. 경청과 탐독의 습관이 거의 없는 내게 그저 꺼내어 놓기만 하는 글이 무슨 힘이 있을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독서보다 시청이 주 생활양식인 날들을 보냈으며 내 삶을 온전하고도 진솔하게 꺼내어놓기엔 가슴팍이 저릿한 일들을 계속해서 겪어내었다. 글쓰기에 적당한 에피소드 정도의 일들로 여겨질 무게가 아닌 것들. 애석하게도 여전히 해결된 것은 없다. 어쩌면 평생을 달고 가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 살아야 하겠기에 또다시 고민을 한다. 그런 시간의 연속이다. 평온한 마음이 지옥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또 안정을 찾는. 다시 또 지옥이 될걸 알지만 지금은 안정되는 기약 없는 삶.
평생을 쓰고 살기로 다짐했던 지난 3년의 시간, 그래도 게으르지 않은 축에 속할 만큼 무언가를 끼적이며 써내려 왔다. 지금은 직업상 말을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반면에 받아들이고 읽어야 하는 시간은 종교생활에 국한된다. 경전을 읽거나 그마저도 경전을 패드로 시청하는 날이 더 많다. 나의 말속 내용이, 전하려는 의도가, 말하는 이에 됨됨이가 얼마나 양질의 것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선한 의도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기에 당분간 말을 하는 삶을 살아가보려 한다. 두려운 건 내 마음속에 얼마나 단단한 내공이 있느냐이다. 참 산전수전 많이도 겪으며 살아왔는데 최근 들어 생각한 건 이다지도 오롯이 한축의 바운더리 안에서만 편향적으로 지낸 삶도 드물 거란 생각이 들 만큼 단조로운 삶이었다. 허무하리 만큼.
글은 그 사람을 닮아간다. 그 사람이 곧 글이다. 따뜻한 글은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고 따뜻한 마음은 따뜻한 생각에서 나오며 그 생각은 따뜻함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의 삶에서 나온다. 내 삶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비우려면 좋은 것으로 채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과거가 어떠했든 지난 시간이 어떤 빛깔이었든지 간에 나는 오늘을 살고 , 살아야 하고, 살아갈 것이기에 바른 생각, 바른 마음, 바른 행동의 삼위일체가 되도록 가능한 비우고, 때때로 가능한 채워두려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써보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