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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해야 할 일

by 여래

열네 평 집에 딸린 방, 집에 있는 유일한 방. 신발을 벗자마자 바로 옆에 있기에 어쩐지 안방이란 말을 붙여주긴 애매하다. 그저 방일뿐. 하지만 누군가에겐 특별했다. 저장강박으로 수십 년 보관한 자신의 물건 들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 한때는 누구보다 깔끔한 결벽증이었다던 중년의 여자. 방문을 열면 90년대 사두었던 오성식 영어교실 카세트 테이프 박스들, 불교경전들, 지금은 입지 않는 옷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아주 작은 방'에 걸맞지 않은 구닥다리 장롱과 그 옆엔 좌식 화장대가 있다. 자개화장대보다 훨씬 더 먼저 만들어졌을 오래된 나무 화장대.


길쭉히 위로 솟은 화장대 거울을 마음의 거울로 삼아 기도를 한다. 108배도 하고 염불도외고 감정이 흔들리면 울기도 한다. 가장 소중했던 것들이 오래도록 쌓여 꼭 치워야 할 것들이 되었다. 그 오래된 것들이 동산처럼 쌓인 그 한 틈새로 기도방 같은 어쩐지 떠올려보기도 조화롭지 못한 방한칸에서 예순을 넘긴 중년의 여성은 살았다. 살아냈다. 주방도 화장실도 거실도 베란다도 구색은 갖춘 집이었지만 어떤지 가장 많은 채취가 남아있는 곳은 그 작은 골방이자 기도방일 테다.


도연은 그 방, 공기, 그 곳에서 살던 모친을 보고 자랐다. 때때로 방문이 잠겨있었고 열려있어도 활짝 열어 맞이해 줄 것 같은 따스함보다 좁은 문 틈새로 모친의 기도가 끝났는지 살펴야 했던 날들. 그런 중에도 제법 당당히 들어갈 수 있었던 무언의 날들이 있다. 안으로 날아드는 폭언과 흉기가 된 물건들을 도연은 참 열심히도 막아냈다. 흉측하던 것들을 연신 날리던 부친은 이제 세상에 없다. 적막하지만 안정을 찾은 골방 안에서 도연의 모친은 무슨 생각을 그리 하며 숱한 세월을 보냈을까. 견디기 힘든 세월,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어쩌지 못하는 두 자식들을 버릴 수 없어 살기 위해 찾은 곳이 그 방일까? 들어가면 하루 종일 나오지 않은 적도 있고 두 딸들의 밥만 차려주고 다시 들어가 버린 날도 많다. 도연의 부친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방 안에서 짐승소리 같은 주체할 수 없는 울음소리가 나오더라도 도연은 어쩌지 못했다. 그저 방 안에서 쏟아내고 수습하고 가라앉히는 모든 게 마무리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image by chatGPT


그 기도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있었을까? 날 살려달라는 것이었을까, 우리 딸들 잘되게 해 달라는 결국은 가족을 위한 기도였을까? 기도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기도를 하는 시간을 조금만 줄이고 그 시간을 딸들의 안위를 묻고 괜찮은지 슬픈지 기쁜지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더라도 부처님이 우리 엄마를 벌하셨을까? 자식들의 마음이 더 안정된 성인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괜스레 딸로서 비뚤어진 마음도 내본다.


그럼에도 도연은 엄마를 참 많이 닮았다. 격이 다른 기도와 종교에 대한 믿음이라 생각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이 기도인 것만큼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도리어 괴리감에 빠지기도 한다. 기도할 시간에 아이들과 한 번 더 눈맞춤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 남편과 아이들에게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루의 일과 대부분이 기도인 사람을 욕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아이엄마, 직업인, 누군가의 아내가 되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여전히 정답은 모른다. 여전히 내 마음 편하자고 기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안 그러면 하루하루 두근대는 심장 때문에 생활조차 힘들어지니까.


욕심일지라도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다. 도연은 스스로를 참 많이 미워했지만 가끔은 이런 자신을 이해한다. 소중한 이들이 행복하면 내 마음도 행복해지니까. 내 마음이 편해지니까.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참 기도가 참 가볍다고 도연은 생각한다. 어여쁘고 선하지만 가벼움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고 힘들더라도 금방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몸과 마음이길 바라는 것에서 짧게 기도를 마무리하면 마음이 더 무겁고 진해진다. 내가 얻을 게 없어도 진심으로 소중한 이들을 위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재연이 부정맥 시술을 받던 날 도연은 참 많이 울었다. 그저 살게 해 달라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으니 기도하는 것밖에 없으니 일단 살려달라고 빌었다. 1초도 멍하니 기다리기만 할 수 없었다. 한두 시간이면 마무리될 시술이 세 시간을 넘기는 시간 동안 도연은 손발이 점점 저려왔다. 몸을 움직여 한 기도가 아니었지만 온 마음과 신경이 언니를 에게로 향했다. 이내 온몸이 저렸다. 제대로 웃으며 살아본 적이 없는 자신의 언니를 위해 참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 때문에 연신 눈물과 함께. 하필이면 일반적 시술이 어려운 자리에 문제의 혈관이 위치해 시술 중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는 안내를 받은 재연은 결국 시술에 성공했고 퇴원했다. 도연은 믿는다. 내가 없는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반드시 이뤄진다고. 언니는 그저 언니이길 바랐고 언니로서 살 수 있게 살려달라고만 빌었다. 그 소망에 그 발원에 나는 없었다. 기도는 그런 거였다.


여전히 도연은 모친의 기도와 자신의 기도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이 다른지 명확히 가를 순 없다. 하지만 진정한 기도가 무엇인지 이제는 알 수 있다. 오직 할 뿐. 그저 할 뿐이라는 자세로 '나'가 없는 기도가 되도록 늘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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