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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무언가로부터 멀어지려 했다

by 여래

지금 서있는 곳에서 두어 걸음만 더 걸어도 도연의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길바닥에서 고군분투하는 개미의 사투가 어지럽고 질서를 위한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는 곧이어 다가올 치열한 싸움의 서막은 아닌지 생각한다.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오른쪽을 돌아보니 노상에 앉아 맥가이버칼로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가 있다. 그 앞에 쌓인 다듬은 나물양이 아침에도 점심에도 변동이 없으면 가슴이 그렇게 쓰릴수 없었다. 혹자는 "네가 다 살 것도 아니면서."라는 말과 함께 그것이야말로 섣부른 위로이자 오지랖, 괴상한 자만일지 모른다고 했다. 와닿지 않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단 몇 걸음의 길을 걷는 동안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찰나의 감정을 분초단위로 분석하고 해석하며 검열했다. 그 와중에도 "그래도 돼. 그럴 수도 있지."라며 용인되는 감정은 거의 없었다. '너의 그런 감정은 위선일지 모르기 때문에, 네가 억울하겠지만 너라고 다 잘한 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와 같은 몇 가지 기준만으로도 대부분의 감정은 틀리거나 적어도 지금은 옳지 못한 것이 되었다.


photo by chatGPT

정답은 알지 못한다.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스스로 변모해야 하며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지난 젊은 날을 견뎠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상도, 성찰할 수 있는 경험치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기 관리 또는 성찰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런 도연에게 칭찬은 달콤한 유혹이다. "수고했다"는 말조차 사탕발림은 아닌가 의심했다. 계속해서 도연을 감정이 이완되고 늘어지게 하거나 썩 나쁘지 않은 감정에서 잠시나마 노닐게 하는 것들도 늘 단속했다. 머릿속도 마음도 쉴틈은 없었다. 상대는 기억하지도 못할 무의미한 단 한마디 말, 벌어진 어떤 일, 그들의 눈빛은 무얼 뜻하는지 늘 분석했지만 결과값은 '에러'였다. 자꾸만 틀린 값을 도출하는 기계는 폐기해야 한다. 새로 고쳐 쓰는 일은 드물다. 그럼에도 완전히 고장 났을지 모르는 부품을 억지로 끼워 맞춰 불완전한 도연을 지탱한다. 차라리 깡그리 무너져버리면 나았을 것이다. 어차피 도연에게 모든 걸 재건하는 시간 동안의 고통이나 매일 깨알같이 자신에게로 튕겨지는 자극들도 피부에 닿으면 심장이 크게 반응해 온몸을 쿵쾅 거리게 만드는 고통이나 그 순간 벗어나고픈 마음은 매한가지니까.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무너져버렸었다면 지금의 나는 달랐을'거라며 후회한다.


십수 년이 지나 한계에 다다르니 하루하루 연명할 수 있는 사탕발림이라도 얻고 싶다. 검열이고 나발이고 숨을 좀 크게 쉬고 싶다. 어쩐지 인정해 주는 말과 제스 처, 눈빛들이 유일한 감로수, 생명수가 된 것 같다. 남아있는 긴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림을 그려보기엔 기력이 쇠하다. 그저 오늘 하루가 안 아프기만을 바란다. 가급적 심장이 쿵쾅거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관계도 일도 시작하지 않는다. 자신을 지키는 더욱 확실한 방법은 이중삼중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 나를 좀 건드리지 말라는 경계의 눈빛을 전방위로 쏘아 보내는 것, 아니 그런 것조차 하지 않고 누군가의 눈에 틔지 않게 사는 것. 이게 이제 도연에게 남은 삶의 잔재다.


짧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산만큼의 시간이 도연 앞에 펼쳐져 있다. 내 삶이 완전히 변모할 거란 기대는 과학과는 담쌓고 살던 도연에게는 꼭 공상과학 같은 것이다. 계속해서 무언가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최대한 멀어져 나를 지키는 것 말고 무엇을 또 할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젯밤 찰나의 진공상태 같았던 평화가 지금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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