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나는 전화보다 문자를 더 선호한다. 가족, 친구, 지인을 제외한 상대에게 전화 거는 일이 어렵다. 그리고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도 너무 부담스럽다. 그렇다. 나는 전화 통화를 하는 데 큰 불편함을 느끼는 ‘콜 포비아’를 가지고 있다.
이 현상은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한 통의 광고 전화를 받고 생기게 되었다. 이 전화를 받기 전까지 나는 서슴없이 전화를 잘 받던 어린이였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속사포 랩으로 광고를 쏟아내는 상대에게 “부모님이 안 계셔서 통화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불쑥 “근데 혹시 전화받는 사람 남자예요?”라고 물었다.
갑자기 들어온 엉뚱한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하니 돌아온 대답은, 지금 생각하면 무례하기 짝이 없다. “아~ 목소리가 그래서 남자인 줄 알았지. 여자도 변성기가 오나보네. 깔깔깔”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연결이 끊어져서 뚜뚜뚜 소리만 들리는 수화기를 들고만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의 가벼운 농담에 깊은 상처를 받은 어린 나. 그 후로 전화를 받는 것도, 거는 것도 두려워졌다. 전화를 걸거나 받기 전에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과도하게 긴장한 탓에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밤마다 이불 킥을 하는 날이 수두룩했다. 그래서 전화를 회피할 수 있는 상황이면 어떻게든 도망치고 멀리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언제까지 전화를 피해 다닐 수만은 없었다. 학회에서 전화 업무를 맡게 되면서 억지로라도 수화기를 들어야 하는 시간들이 잦아졌고, 다행히 그 과정을 거치며 차츰 ‘전화는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익혀 나갔다.
콜 포비아를 극복하기 위해 생긴, 작은 의식 같은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전화하기 전, 할 말 모두 적어 두기’이다. 책상 앞에 앉아 메모장과 펜을 꺼내 꼭 해야 하는 말들을 차근차근 적어본다. 나만의 대본이 생기면 횡설수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한결 가볍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그리고 모르는 번호는 한 번에 받지 않는 것도 나의 작고 소중한 마음을 지키는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덤으로 무시무시한 보이스피싱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여전히 전화벨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주저하는 소심한 사람이라면, 내가 사용하는 전화 대본 작성법과 심호흡을 한 번 시도해 보길 바란다. 중간에 말이 조금 꼬이거나 정적이 흘러도 괜찮다. 종이 위에 적어 둔 우리의 진심은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에게 충분히 잘 전달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