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잎들을 물들인 시간
11월만 되면 예쁜 단풍나무가 보고 싶어 서울로 향했다. 3년 전에는 성균관대에 있는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 아래서 노랗게 물든 잎을 바라봤다. 그리고 근처의 단풍이 유명한 예쁜 야외 카페에 들러 가을의 여운을 즐겼다. 그날 한 전시회에서 흰 꽃이 서서히 붉게 물드는 모습을 보며 단풍을 소멸의 계절 앞에서 드러나는 나무의 마지막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1년 전 11월에도 나는 서울로 향했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내한 공연에 처음으로 간 날이었다. 그날 아침에는 서울숲 가운데에 있는 큰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이른 아침부터 여러 사람들이 그 나무의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했고 나도 사진으로 담았다. 나무를 바라보며 느꼈던 설렘과 행복이 저녁의 음악 속에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올해 11월에도 예쁜 단풍을 보러 어딘가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나는 단순히 3년 전의 나처럼 예쁜 풍경을 바라보거나 1년 전의 나처럼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고 간직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진짜로 내 심장이 뛰는 글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3년 전 11월에는 물든 단풍나무를 보며 ‘소멸의 계절 앞 마지막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지만 올해 11월에는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비움의 시간, 그리고 새 잎을 피우기 위한 붉게 익어가는 기다림의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3년 전 전시회에서 붉게 물들어 간 꽃을 보며 새로운 생명력을 느꼈고, 1년 전 밴드 공연을 통해 나도 즐길 줄 아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 내면이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나아가야 할 때다. 11월은 한 해의 끝자락이라 아쉬운 달이기도 하지만, 나무가 새 잎을 피우기 위해 잎을 물들이고 떨어뜨리듯 나 역시 새로운 성장을 위해 감정의 잎들을 물들여 글로써 떨어뜨리고 싶다. 그렇게 11월은 내게 ‘끝’이 아니라 ‘비움을 통한 시작’의 달이 되었다. 그리고 봄이 오면, 나는 새 잎처럼 다시 자라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