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망하지 않았다
상담실 기록
오늘 상담실 문을 연 것은 쉰한 살 장태수 씨였습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멈칫했습니다.
명함을 꺼내려다가 주머니에서 손을 뺐습니다.
"죄송합니다. 명함이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습니다.
"이십오 년 동안 명함을 주고받으며 살았는데 이제는 줄 명함이 없습니다."
태수 씨는 의자에 앉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의 양복은 잘 다려져 있었지만 소매 끝이 해져 있었습니다.
구두는 반질반질했지만 굽이 닳아 있었습니다.
"저는 마흔다섯에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명예퇴직이 아니라 권고사직이었습니다.
회사는 구조조정이라고 불렀지만 저는 해고당한 겁니다."
"그때 제 나이 마흔다섯. 아들은 고등학생 딸은 중학생이었습니다."
태수 씨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력서도 괜찮았습니다.
명문대 출신에 대기업 경력 이십 년. 부장까지 했으니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태수 씨는 가방에서 서류 묶음을 꺼냈습니다. 그것은 입사 지원서 사본들이었습니다.
"육 년 동안 삼백십이 곳에 지원했습니다. 여기 다 있습니다."
서류들은 두툼했습니다. 각 서류마다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불합격.
"처음에는 대기업에 지원했습니다. 서류에서 떨어졌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중견기업에 지원했습니다. 면접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최종에서 떨어졌습니다.
조직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태수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그다음에는 중소기업에 지원했습니다. 이번에는 연봉이 문제였습니다.
너무 많이 달라고 하면 부담스럽다고 했고 적게 달라고 하면 왜 그렇게 적게 받으려 하냐고 의심했습니다."
"결국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마흔다섯은 정년입니다. 쉰한 살은 이미 은퇴한 나이입니다."
태수 씨는 서류 묶음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일할 수 있습니다. 건강합니다. 경험도 있습니다. 배울 의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저를 원하지 않습니다."
태수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처음 일 년은 퇴직금으로 버텼습니다. 아내에게는 곧 취직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 년째부터는 저축을 깨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학원비 생활비 대출 이자. 돈은 물 새듯 나갔습니다."
"삼 년째에는 보험을 해지했습니다. 사 년째에는 차를 팔았습니다. 오 년째에는 전세 보증금을 줄여서
월세로 이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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