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전부다
2006년, 나는 처음으로 쓰러졌었다.
중학생 때 체육시간이었다. 당시 운동장에서 선생님의 긴 설교를 듣느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 그때 뭔가 머릿속이 핑 도는 느낌이 들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호통을 치는 선생님 말을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소심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땀을 흘리며 버티고 있었다. 1분이 10분처럼 느껴졌을 때, 나는 얼굴이 하얘지면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양호실이었고, 그날 그대로 조퇴를 했다.
나에게 무슨 병이 있는 것인가, 보다는 30여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쓰러지는 경험을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떤 모양새로 쓰러졌는지, 누가 나를 옮겼는지, 그 무엇 하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창피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오래 서있거나 힘을 쓰는 활동을 하면 그대로 픽, 쓰러지곤 했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도 오래 서 있다가 쓰러졌고,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먹다가도 쓰러졌다. 엄마와 큰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병원에서도 내가 쓰러지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뇌 검사를 비롯해서 의심이 가는 모든 검사를 했지만 의사는 내게 이 한 마디를 끝으로 정리를 해버렸다.
힘들면, 참지 말고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아요
나는 그때부터 나라는 ‘인간’은 절대 심하게 움직이거나 땅 위에 오래 서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위염, 장염을 달고 살았으며 삐쩍 마른 몸에 운동신경은 좋지 않았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고, 도리어 소화장애는 잦았다. 한마디로 종잇장 같은 몸뚱이에 ‘저질체력’을 지닌 채로 태어났다는 것을 차가운 시멘트에 몸을 여러 번 부딪히고 나서야 깨달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의사가 ‘힘들면 그냥 누우세요’라는 말을 ‘힘든 일은 하지 마세요’라는 뜻으로 나름 해석하며 살아왔다.
힘든 일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나를 보며, 오해도 많이 받았다. 싫어서 안 하는 사람, 귀찮아서 피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한 번은 대학에서 동기들과 영화 촬영을 하는데, 돌아가면서 서로의 스텝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연출을 맡은 친구가 나에게 동시녹음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는데 나는 그건 못할 것 같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유를 묻는 그에게 ‘나는 오래 서 있으면 시멘트에 머리를 부딪히고, 누군가 나를 업고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그러면 영화도 지연되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너무 쪽팔릴 것 같은데) 그러는데도 괜찮아?’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마이크를 오랫동안 들고 있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니, 자신도 나를 도와줬는 데,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며 나와 계속 옥신각신했다. 결국 내가 사운드 담당 후배를 따로 구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어쩔 수 없이 몸이 예전부터 좋지 않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는 했지만, 사실을 말하는 대도 무언가 변명 같은 느낌도 들었고, 이런 나도 답답했다.
나는 그렇게 갑자기 쿵, 쓰러지는 것이 두려워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며 살아왔다. 신호등이 깜빡거리면, 급하게 뛰어가기보다는 천천히 다음 신호를 기다렸고, 지하철에서 오랫동안 서 있다가 위기가 찾아오면, 문이 열리자마자 곧바로 내려서 의자에 조금 쉬다가 다음 기차를 기다렸다.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 ‘달리기’보다는 ‘기다리기’를 실천하며 30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나는, 정말 달릴 수 없는 사람일까?
달리는 여자
2018년부터, 살이 15킬로가 쪘다. 원인은 이전 회사에서의 잦은 야근으로 인한 야식으로 추정되는 데, 단 한 번도 살이 찐 적이 없는 내가 갑자기 이렇게 몸무게가 늘어난 것을 보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모든 옷은 몸에 맞지 않게 되었고, 내 키의 평균 몸무게를 훌쩍 넘어버렸다. 가끔 산책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에 먹는 맥주와 치킨의 유혹을 버리지 못해서 몸무게는 여전히 그대로다. ‘난 어차피 달릴 수 없는 몸이니까’, ‘운동을 심하게 하면 안 되는 저질체력 몸뚱이니까’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먹고 바로 눕기’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런 내가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최근에 겪은 작은 소화불량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그 날 회사 점심으로 초밥을 먹으러 갔는데, 뭔가 평소보다 빨리 먹었는지 하루 종일 소화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점점 가슴이 답답하고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운동도 안 하고 눕기만 하다가는 공룡처럼 몸이 부풀어 오를 것만 같았다.
저번 주말 저녁, 한번 달려보자는 마음을 먹고 러닝 앱을 깔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도저히 나 자신이 달리는 상상이 되지 않아서 빠른 걸음으로 5km를 걸었다. 앱에서 5km 달성했다는 음성을 들으니 뭔가 엄청 뿌듯하고, 개운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커피숍에서 아이스 밀크티를 테이크 아웃해서 먹었다. 회사에서 점심 먹고 마셨을 때보다 100배 이상은 맛있었다. 다음 날, 어쩐지 자신감이 생긴 나는 처음으로 달리기에 도전했다. 머리를 질끈 묶고, 편한 운동화를 신고 집 밖에 나오자마자 공원까지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보폭을 늘려가며, 바람을 맞으며, 내 어깨가 좌, 우로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뻐근했던 뼈들이 부드럽게 운동하는 기분을 만끽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나 왜 생각보다 잘 달리는 거지?
나란히 걸어가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제치면서, 홀로 속력을 내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달리지 못한다’라는 생각에 조금만 뛰어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는데, ‘오늘 한번 달려보자’라는 생각으로 앞으로 나아가니 생각보다 별로 안 힘들었다. 심지어 땅 위를 잘도 뛰어다니는 나 자신이 점점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공원을 뛰다가,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가슴을 펴고 몸의 근육을 모두 사용하며 속력을 내니, 내가 그렇게 피해 다니던 내 ‘몸’에 대해 유대감이 생겼다고 할까. 나, 그렇게 심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도리어 내일도, 모레도 달리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 내 몸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사람들은 운동을 왜 하는가? 몸을 쓰면서 땀을 흘리면서, 게으름과 싸우고 나약함을 이겨내면서 작은 성취를 맛본다. 나는 이제 매일 달리기를 한다. 몸을 붓이라 한다면, 달리기란 땅 위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다. 나는 얼마나 ‘나의 몸’에 대해 무지했던 가. 그깟 달리기 하나를 못한다고 생각해서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 멀리했던 내 몸으로 이제는 바닥에 무지개도 그려보고 내일의 아침도 상상해야지.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보다는 '시작이 전부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언젠가 공룡 몸뚱이에서 벗어나고 싶다)
오늘, 달려보는 거 어때요?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브런치에서 제 브런치 북 [오늘도 너의 이름을 잊지 못해서]가 오늘의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네요. ^^
아침부터 기분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진실된 글을 쓰라는 의미로 여미의 브런치를 이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