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대학생 때 영화를 찍으며 알게 된 음악 하는 친구, K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와는 같은 학교도, 같은 회사도 함께 다닌 적이 없지만 함께 영화 작업을 한 뒤로 기억 조차 나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친해졌다. 우리는 우연찮게 동갑이었고, 남들보다 학교를 오래 다녔다는 사실과 영화와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다. 함께 프로젝트가 끝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차도 마시고 하니 자연스럽게 편한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사소한 라이프 스타일마저도 비슷하다. 어딜 가든 늘 가방에는 한 권의 책이 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커피숍에 가서도 대화를 계속 하기보다는 각자 책을 읽거나 노트 같은 것들을 끄적이는 것을 더 좋아하며, 여행을 가면 서점이나 책방 같은 곳을 꼭 가줘야 한다. 나는 내가 본 영화나 책의 내용을 보고 나의 삶을 연결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K한테 부담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녀를 만나는 시간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즐겁고 기대되는 시간은, K와 술을 마시는 시간이다. 좋은 음악이 나오고 맛있는 안주와 와인을 마시면서 지나가버린 꿈을 말하고,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꿈을 기대하고, 매번 말해도 질리지 않은 과거의 여행지에 대해서 회고한다.
우리는 20대 때, 돈을 벌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보냈다는 것도 비슷했다. 나는 영화를 배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편입을 했으며, K도 음악을 배우기 위해 조교 생활을 하며 몇 년 동안 작곡을 배웠다. 불안했지만, 불안하지 않았고 걱정이 되었지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때는 그 시간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필요하다고 믿었으니까. 그렇게 20대 후반에 대학 졸업을 했고, 나도 그렇지만 그녀도 안정된 직장을 갖는데 꽤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평생 무엇을 먹고살며 버틸지, 그러한 현실적인 준비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계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취업을 하기가 어려었다. 20대에 보낸 시간들이 30대 때 고스란히 반영이 되었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도전하긴 했어도, 직업을 갖기 위한 또 다른 준비를 해야만 했다.
K를 무척 오랜만에 만났다.
1년 여간의 시간 끝에 취업을 한 그녀는, 역시나 평소보다 밝아 보았다. 원래는 브런치 카페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책을 읽을 생각이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이야기만 했다. 뭘 읽을지 몰라 책을 두 권이나 들고 왔는데 한쪽도 펴지 못했다. 저녁에는 자주 가는 단골 LP바에 가서 음악을 들으며 와인 한 병을 먹었다. (사실 한 병 이상 먹은 것 같다) 이야기의 흐름은 항상 비슷하다. 최근에 본 영화나 책에 대한 이야기, 독립영화배우나 감독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가는 곳은 왜 맨날 여자들만 있는 지에 대한 이야기..... 이 패턴은 고정이다.
코로나 19라 그런 것도 있지만, 요즘 나는 정말 사람을 안 만났다. 집에서 혼자 놀아도 충분히 재밌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고, 활동적인 것을 하면서 시간 보내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뭐랄까,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금요일부터 설레는 거다. 역시나 혼자 노는 것보다 같이 노는 게 100배, 천배 더 재밌다. 대화를 하고 싶어도 대화할 사람이 없었으니 안 한 게 아니라 못했나 보다. 모처럼 오랜만에 외출 했지만, 이른 귀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다. 하필 와인바에서는 이소라의 "청혼"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는 K에게 소리쳤다. "이소라 노래가 나오는데 가야 한다니 너무 잔인해!"
K와 마시는 술은 이상하게도 항상 맛있다. 나의 10년 지기 친구들과 마시는 술보다도, 늘 언제나 맛있다. K도 이제 알고 지낸 지는 5년 정도 되었지만. 이것은 늘 미스터리다. 안주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술이 고급술도 아닌데, K는 존재만으로도 술맛을 더 좋게 하는 묘한 에너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주말에 먹은 술은 너무 달았고, 맛있었고 음악이 좋았고, 즐거움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네가 잘 풀려야 우리가 잘 풀린다는 것
30대가 되니 내 주변 사람들, 특히 내가 만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겪는 모든 일이 잘 풀려야 우리가 잘 풀리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네가 잘 되어야 우리가 만날 수 있고 너와 내가 시답잖은 소리를 해대며 술을 마셔도 전혀 찜찜한 것들이 없이 그 날 기분 좋게 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마찬 가지로, 나의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아야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지 듯이, 인간은 개인이 행복해야 타인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위태로운 시간들이 지나고, 준비하는 모든 것들이 잘 끝나고, 비로소 별 일 없는 하루가 탄생했을 때, "뭐해? 만나서 책이나 읽고 술이나 마시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니.
글/그림 여미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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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당신도 잘 풀려서, 나와 만나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