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으로 아침을 맞이한 지는 꽤 되었다. 오늘의 날씨가 궁금하기보다는, 얼마나 더 잘 수 있는 지를 대충 가늠하면서 얼굴을 구긴다. 야속하게도 항상 여유가 없고, 수면은 늘 충분하지 않다. 가뜩이나 수면 부족으로 날이 서있는데 기억 저 편에 묻어놨던 누군가를 꿈에서 마주하기라도 하면, 내 무의식은 괜히 죄인이 된다. 이해할 수 없는 내 안의 수많은 자아들과 싸우며, 온몸을 비틀거린 채 머릿속을 비워내려고 저항하는 순간 알람이 울린다. 이제 더 이상 쉬어갈 곳은 없다.
감성을 잃어버린 사람들
노래 한 곡으로도 눈물이 줄줄 흐르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와 내가 숨 쉬는 이 공간 자체에 대한 이유 없는 찬양과 말랑 말랑한 예찬들이 늘어날 때마다 하루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수분 유지에 충분한 감성이 내 몸 안에 흐르고 있었기에, 오히려 들뜬 마음을 추스리기 힘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것을 행복이라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감성이 가득했을 땐 세상의 빛이 모두 무지갯빛으로 보였지만 반대로 감정의 바닥을 칠 때는 하염없이 내려갔었으니까. 그렇게 요동치는 마음을 부여잡고 20대를 겨우 보내왔더니 이제는 나에게 '감성'이라는 것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멘트 인간이 되어버렸다.
또각또각,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지하철 환승구역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속으로 고슴도치 한 마리가 합류한다. 삐죽삐죽 세워진 가시를 온몸에 장착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하기 위해 달려가는 삶, 가까스로 그 문을 통과하면 다시 무표정으로 정해진 일들을 처리하고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삶. 역시나 감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그러하다. 앞에 놓인 일들을 빨리 해결해야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사기 위해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하고, '오늘도 무사히'라는 생각만으로 기계처럼 일과를 보낸다. 감성이 사라지니, 농담 한마디에도 삐뚤어진 시선이 생기고 옆 사람이 헤매는 것이 보이는데도 살뜰히 챙기려는 여유 조차 없다.
쉽게 감동받고 쉽게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감성의 밭은 가뭄이 온 지 오래이고, 반복되는 하루에 몸을 맡긴 채 집에 오면 드러눕기 바쁘다. 살아있는 무언가를 보고 예쁘다, 아름답다, 라는 말을 언제 마지막으로 했던가. 30대를 지나면 감성 세포도 급격히 줄어드는 걸까.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고슴도치의 삶은 외로운 법이다.
퇴근 후 달리기를 전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전에는 혼자만의 취미 생활, 편하게 뜀박질을 하고 조금만 힘들면 집으로 돌아갔지만, 크루에 합류하면서 나름 육체적 한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고 있다. 함께 발을 맞춰 뛰어가니 중간 포기는 줄어들었고, 숨이 넘어갈 듯싶을 때 도착한 밤하늘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오늘 하루도 무표정으로 보낸 나에게 생동감을 주기 위해 뜀박질을 자처하고, 발을 구르며 다 함께 별을 본다. 반짝이는 별은 감성을 잃어버린 자들에게는 까스활명수와 같은 존재. 뜀박질로 닫혀 있던 감성의 문을 열고 쏟아지는 별을 마음속 어딘가에 주워 담는다. 별을 오래 담아두기엔 내 안의 세상이 너무나 작고 좁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딘가에 몰래 흘려버린다. 감성을 잃어버린 자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감성은 분명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예쁜 곳을 보려는 노력, 다정한 말 한마디를 하려는 용기, 나보다 서툴고 느린 사람을 기다려줄 줄 아는 여유. 함께 달리다 보면 느낀다. 나보다 훨씬 좋은 체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앞서 가지 않고 나의 발에 맞춰주는 이의 마음엔, 배려의 감성이 흐른다는 것을.
감성은 배려를 동반하고, 마음 나누기를 좋아하니까.
저마다의 이유로 인생은 어려운 일들 투성이다.
그래도 감성만은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가, 그리고 내가.
글 여미
사진 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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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라 감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