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에게는 디저트가 필요해

by 여미

작년을 기점으로 식성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원래 디저트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밥을 든든하게 먹기를 좋아해서, 식전에 군것질을 하거나 식후에 곧바로 디저트를 잘 먹지 않았다. 한번 식사를 하면 포만감이 충분할 때까지 끼니를 해결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밥을 먹고 카페를 가면 함께 주문한 케이크나 빵 종류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디저트 없이는 숨 조차 쉬기 싫을 정도가 되었다.


내 몸은 풍선인 게 분명하다. 한때 지나친 야식으로 15kg가 쪘다가, 지금은 다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원상태로 돌아왔다. 딱히 다이어트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잦은 위염으로 고생을 좀 했더니 자연스럽게 살이 빠졌다. 한 친구는 내게 말한다. 너는 뚱뚱할 자격이 없는 몸이라고.


아직도 세상이 요구하는 수많은 자격조건에 해당되지 않아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데 뚱뚱한 것 마저도 자격 박탈이라니. 나는 거의 대부분의 인생을 대나무로 만든 인형처럼 팔, 다리에 살이 없는 채로 살아왔다. 당연히 하의도 제일 작은 사이즈를 입어야 했다. 그러던 내가 회사 스트레스를 모두 음식으로 푸는 습관이 생겼고, 급격하게 살이 쪘다.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어리둥절했지만, 마른 몸도 더 이상 매력적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은근히 통통해지고 있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그것은 건강한 변화가 아니었다. 밤 11시 이후에 피자, 치킨, 햄버거, 그리고 잦은 음주를 즐겼기 때문에 몸이 버티다 못해 부풀어 올랐던 것뿐이지, 나의 오장육부는 점점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역류성 식도염까지 찾아오면서 정작 먹어야 하는 순간에 제대로 끼니를 먹지 못했다. 먹는 행복으로 지내왔던 일상이 한순간에 파괴되고 있음을 느꼈다.


약을 먹어도 잠깐 좋아졌을 뿐, 식습관을 바꾸지 않으니 위염은 다시 재발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나는 과식을 하지 않기로, 기름진 음식과는 이별하기로 선언하고 거의 채식주의자처럼 식성을 모두 바꾸었다. 배가 많이 고프지 않으면 찐 감자나 계란, 각종 과일 채소를 갈아 만든 주스를 마셨고 밤 9시 이후에는 절대 음식을 먹지 않았다. 다시 소식을 하며 건강한 음식들만 먹으니 몸은 점점 회복하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몸무게는 이전에 대나무 인형 때와는 동일한 상태로 돌아왔고, 지금도 여전히 소식하며 관리하고 있다.


소식이 좋긴 좋은데, 문제는 밥을 조금 먹으니 뭔가 굉장히 허전해진 것이다. 가뜩이나 기운도 없는데 밥을 적게 먹으니 기분까지 우울해졌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식후 디저트! 디저트만 있으면 하루가 비로소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밥을 심심하게 먹고, 대신에 아주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 커피보다는 달달한 스무디나 녹차가 들어간 라테, 버터가 들어간 스콘이나 크로플을 생크림과 딸기잼에 찍어먹으면 정말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디저트가 필요해


사실 그럴 거면 밥을 충분하게 먹고 디저트를 먹지 않은 편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요새 후회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나름 심리적으로 보상을 주고 있다. 충동적이든, 계획적이든 사소한 것 하나하나 실행을 하고 나면 왜 이렇게 후회가 되는 걸까? 얼마 전에 바람을 막아줄 넉넉하고 편한 패딩이 입고 싶어서 세일이 많이 들어간 패딩을 저렴한 가격에 샀는데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자크가 말썽이라 입을 때마다 굉장히 불편한 거다. 돈을 더 주고 좋은 패딩을 살걸, 이라며 후회하고 있는데 그저께부터는 날씨가 아예 풀려버렸다. 이 패딩은 수명이 단 일주일이었다. 상태가 메롱이라 내년에도 입을지 말 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이 패딩을 샀을까,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고 있는데 바로 어제도 다른 일로 후회를 했다.


머리 끝 쪽이 상한 것 같아서 빗질이 안 되는 거다. 끝에만 살짝 다듬고 싶어서 동네 미용실에 갔는데, 원장님이 내 머리를 보더니 너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 머리는 파마를 해야 합니다, 손님. 곱슬이시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 됩니다, 손님." 거의 파마를 안 하면 안 될 것처럼 말씀하시는 거다.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스앵님처럼 너무 확신에 차서 소리내셨다. 전문가가 그렇게 말하는데, 뭔가 솔깃하기도 했고, 원장님도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에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가 버렸다. 스스로 야무지고 똑 부러져서 잘 속지 않는다고 믿어왔는데, 어제는 유독 판단력이 제로인 상태였나 보다. 더군다나 요새 머리가 자주 빠졌는데, 원장님이 머리 자주 빠지지 않냐면서..... 내 고충을 다 알고 있는 거다. (생각해보면 머리 안 빠지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때 내가 했던 대답은 아직도 후회의 강을 건너고 있다. "아, 파마 지금 할 수 있나요?"


나는 원래 생각한 금액의 약 10배는 더 돈을 쓰고야 말았다. 물론 파마를 하면서도 속으로 "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너 님아 돈은 있니?" "이번 달 할부 그만 하기로 하지 않았니?" "파마를 꼭 지금 해야 해?" "머리만 자른다고 말하지~" 내 안의 수많은 내적 자아가 분열되고 있었기 때문에 파마를 하는 4시간 동안 괴로워 죽는지 알았다. 너무 충동적인 선택이었고, 계획되지 않은 지출을 해버렸다. 첫 방문한 미용실이었기 때문에 결과가 좋을지도 모르겠는 것도 허탈감을 더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오면서 패딩 때와는 또 다른 자괴감을 느꼈다. 아, 2021년 1월의 내 판단력은 최악이다.


원장님은 나에게 리뷰를 써달라며 두피 샴푸, 트리트먼트 등 이것저것 챙겨주시긴 했는데 애써 밝은 표정으로 받긴 했지만 하나도 안 기쁜 거다. 물론 이건 전부 내가 선택한 결과다. 원장님은 나에게 권유했을 뿐이고, 난 거절할 수도 있었는데 받아들인거니까. 머리는 나쁘지 않게 나온 것 같으나, 생각보다 비싸게 준 것 같기도 했고 생각보다 기분 전환은 되지 않았다. 이게 뭐람. 디저트가 급격하게 당겼다.


주말 내내 후회의 강을 건너느라 사실 푹 쉬지는 못했다. 책도 읽기 싫었고 글도 쓰기 싫었다. 천장만 꿈뻑이면서 한동안 멍을 때렸다. 생각해보니 3일 전에는 맥북에 꿀차를 쏟아서 키보드가 망가진 바람에 수리비로 15만 원이나 썼다. 아, 이 정도면 나를 위해 디저트는 무조건 먹어줘야 하는 게 맞는 거다!


아직도 1월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내가 더 이상 이상한 판단을 하지 않기를, 후회의 강을 그만 건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머리도 달라졌고 맥북도 고쳤고 패딩도 얌전히 장롱에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은 너덜너덜해졌다. 이게 다 집에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운동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부지런히 글도 쓰지 않은 내 탓이다(?) 분노를 견디지 못해서 오늘 저녁에는 운동복을 꺼내입고 3km 정도 달리고 왔다. 날씨가 풀려서 달리기 매우 좋았고, 오랜만에 분노의 질주를 하니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디저트는 너무나 필요한 존재다.

어차피 나는 가끔 이상한 타이밍에 바보가 되곤 하니까.

바보가 됐을 때 바보인 지 모르니 바보가 되는 걸 막을 수는 없겠지.

늘 내가 나를 만족시킬 순 없는 법이니까.


그러니 바보의 선택에 "야, 일단 이거 먹고 힘내" 라며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건,

디저트가 감히 최고다.


Holiday copy.jpg 디저트가 필요해

그래도 이제 그만 바보가 되자.

(원장님이 주신 샴푸로 내일 감아봐야지)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여미의 유튜브(이거... 보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https://www.youtube.com/channel/UCf4ItL7eDGjlHMPHES9QQ4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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