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으로 살아보니 어때?

by 여미

나의 스물아홉에는 백수였고, 심지어 갓 서른이 되었을 때도 백수였다.


취업을 인생의 큰 목표나 방향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것은 일종의 수단이며, 꾸준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도전하는 것으로 20대를 꽉 차게 보냈다. 가끔 일하다가, 가끔 백수가 되기도 했고 가끔 학생이 되었다가 가끔 영화를 찍거나 책을 썼고 가끔 여행자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뭐 하나 특별히 대단하게 이룬 것은 없다) 여기저기 어슬렁 거리며 기웃거렸더니 어느덧 서른이 되었더라. 그리고 이제는 기웃거리는 짓은 그만하고(해야 하고) 생계는 유지하면서 내가 해볼 수 있는 일들을 천천히 살펴보는 중이다. (심각하게 천천히 인 것 같기는 하다)


20대와는 달리 서른에 직업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지는 않았다(안 괜찮은 게 분명 맞다). 그동안은 1년씩만 일을 하고 퇴사해버려도, 조금만 쉬다 움직이면 당연히 다음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주위에 나처럼 방황하고 있는 젊은이들 속에 섞여 있었기에 대학생인 척 대낮에 같이 카페라도 가서 커피를 홀짝거리며 노트만 끄적이다가 저녁으로 주꾸미를 먹으러 가도 하하호호 잘도 놀았다.


그러나 백수 서른이 되는 순간 '아뿔싸, 이제는 불러주는 곳도 없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면서 거대한 비구름이 내 머리 위에만 졸졸 따라다니며 나를 심난하게 만들었다. 물론 아무도 대놓고는 뭐라 하지 않는데(가족 제외) 그냥 나 스스로가 '어, 이러면 정말 안될 것 같은데'라는 불안한 시선이 생기면서 가슴이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나 같은 경우는 나름 영화 공부를 더 하고자 학업을 계속 이어가려고 했던 찰나, 원하던 대학원에 튕겨나가게 되면서 급하게 좌회전을 하여 취업 골목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심히 조급해졌다. 아무리 합격 문턱이 높은 곳이라도 해도, 최종 관문까지 간 마당에 붙을 줄 알았는데 (많이) 충격적이었다. 대학원 발표 날짜는 2019년 12월 24일이었고, 내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그래서 나의 서른은 약간 얼떨결에 맞이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계획한 일들이 한순간에 엎어졌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플랜 B를 아예 염두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크게 그쪽으로 마음을 두지도 않았었다. "잘 안되면 취업해야지 뭐~"라고 너스레를 떠들고 다니던 나의 태도는, 막상 닥치고 보니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더랬다. 마음을 추스르고 새해가 지나고서야 이력서를 쓰러 동네 카페에 갔는데, 주문을 받는 직원을 보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은 서른인데 왜 대낮에 카페에 오지?"라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직업으로서의 서른


그렇다. 결코 무거운 숫자는 아니었다. 남이 생각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20대는 탐색하고, 탐구하고, 시행착오가 있는 나이라고 인지한다. 넘어져도 괜찮고 잠깐 샛길로 새어도, 어디 멀리 놀러 나갔다 와도, 아무 수확 없어도 조금 실망하고 말면 괜찮았다. 그런데 서른에도 이력서를 쓰고 있다니 느낌이 상당히 달랐다. 현실 감각이 조금 뎌딘 나라도 이 부분은 인정해야 하고 피해 갈 수 없었다. 부랴부랴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대학원에 붙는 것보다 그 이상으로 간절했다.

서른이 된다는 것, 주머니에 돈은 없어도 직업은 있어야 되는구나, 싶은 거다.


나이는 서른, 애매하기도 굉장히 애매한 경력을 가지고서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다. 연락이 오지 않거나, 면접에 탈락이라도 되면 비구름은 점점 더 거대한 양떼구름으로 불어났다. 내 나이가 많아서인가, 아무래도 후임으로 두기에는 부담스럽나, 여러 가지 생각들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두 달을 고배를 마시다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괜찮은 거리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직무로 입사가 확정되고 얼마나 안도하고 행복했던 지 모르겠다. 괜한 피해의식을 하느라 카페를 옮겨 다니며 차가운 커피만 무표정으로 홀짝였는데 정말 십 년 감수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서른에 취준을 하게 되면서 직통으로 맞았다. 20대에 수도 없이 백수를 경험했지만 서른의 백수는 확실히 비구름이 몇 개는 더 추가되는 기분이다. 물론, 이 세상일이 모두 내 마음대로 흘러가진 않겠지만.


가까스로 자리 잡은 회사에서 일을 하며 이제 오늘로서 마지막 서른을 맞이했다. 나의 서른은 어떻게 보냈나?라는 질문을 던져보니, 앞서 말한 직업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과 인생이 꽤나 단조롭다(좋은 의미로), 이 둘 뿐이었다.


일과 사랑, 사랑과 일


프로이트가 한 말처럼, 일과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것은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해야 내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사랑을 해야 오늘의 나를 더 아낄 수 있다. 생활을 이어나가고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전부라 느끼며 서른을 보냈다. 사소한 일에도 복잡하게 느껴지고 심적으로 방황했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인생사 모든 내 마음대로 되는 일 없으니 크게 실망할 것도 없으며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러려니' 보내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툭툭 상처 받고, 가끔 배배 꼬여있는 상태로 삐죽 거리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점점 단조로워지고 있다는 것은 너그러워진 것 인지 관대해진 것 인지, 아니면 애초에 기대심리가 낮아지면서 덜 상처 받는 법을 터득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분명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인생이 단조로운 것은 당연한 것이다. 뭘 하든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고, 권태가 따라오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니 남는 것은 일과 사랑, 이 두 가지뿐이겠다. 단조로운 것을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다들 나와 같이 느끼며 살고 있으니 버티자며 위로하고, 적당히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땐 춤을 추다가 깨꼬닥 죽고 싶다(죽는 시기가 오면 죽는다는 이야기지 죽는 게 꿈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른이라는 것이 괜히 대단한 건 아닌 것 같다. 잘 모르는 것이 많은 건 누구나 똑같고 철없고 아이 같은 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나마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스스로나 타인에게 무슨 일이 생길 지라도 침착하고 여유 있게 생각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 그러한 마음 가짐이 장착되어 안정감을 느끼는(느끼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회사가 휴무라 느긋이 집에서 된장찌개를 끓인 점심을 먹고 아이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요즘 꽂혔다)를 마시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 서른에 대한 회고를 써봐야지, 하면서도 솔직히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나름 몸도 마음도 심플해진 내가 좋아졌다는 말을 끝으로 전하고 싶다.


2021

새해에는 연애 좀 해보고 싶다(이젠 일은 됐으니 사랑만 하면 된다)

그래야 달달한 그림도 그리고 연애소설도 좀 써볼 텐데 이런 시멘트 감성으로는 뭣도 안된다.

그러려면 집 밖에 좀 나가야 하는데 오늘도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던 마당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란 이미 그른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래도 안돼, 사랑은 해야 해!

나도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더 다가가기로, 도망가려고 하면 쫓아가서 고백해버리기로.

새해 소망을 힘차게 적어버렸다(가능한 건가?)


서른으로 살아보니 어때?



브런치를 시작한 지도 3년이 지났네요. :)

지속적으로 여미의 브런치를 찾아주신 단골 구독자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헤헤

2021년에도, 제 글과 그림이 누군가의 마음 한 구석에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꼭!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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