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는 딱 세 번, 위태로웠던 적이 있다.
스무 살이었다. 그냥 이유 없이 방황했고, 이유 없이 외로웠다. 숫기도 없어서 학과에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했다. 외로워서 이소라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달랬고, 새벽 라디오에 몸을 싣다가 새벽 네다섯 시에 잠들었다. 처방전은, 하루 종일 학교 도서관에서 영화보기, 블로그에 글쓰기, 소꿉친구들 만나기. 그러다 "이대로는 안돼!"라고 홀로 외치며 용기를 내어 학과 밴드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러다 어느새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생겼고, 학교 수업도 재밌어지고, 친한 외국인 교수님도 생겼고, 졸업작품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병이 나았다.
서른이었다. 몸이 다시 안 좋아졌다. 물만 마셔도 체했고, 무슨 음식을 먹든 즐겁지 않았다. 평소 식습관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내 책임이 컸다. 먹고 바로 잠들었고, 과식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알 수 없는 위병이 고등학교 이후로 다시 재발했다. 내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그 누구도 탓을 할 수 없었다. 나를 미워하고 후회하는 것, 그게 제일 괴로웠다. 너무 위태로워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 친해진 동료가 내게 몇 번 맥주를 마시자고 했지만, 위장이 좋지 않아 피했다. 그 뒤로 그 동료와는 더 이상 가까워지지 못했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도 음식 때문에 가기 싫었고, 그 누군가와의 만남도 모두 음식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선뜻 가지 못했다. 나만 특이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연애는커녕 결혼도 못할 것 같았다. 너무 위태로워서 이렇게 살 거면 왜 사나, 이 생각 매일매일 했다. 그러다 "이대로는 안돼!"라고 홀로 외치며 꿋꿋이 밥도 해 먹고 채소도 먹고 과일도 사다 먹었다. 처방전은 위장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껏 먹고 마시기, 요가 학원 등록하기. 어? 근데 진짜, 나았다.
서른 하나였다. 또 이유 없이 너무 외로웠다. 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매우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게 뭔지 그게 나에게 즐거움이 주는지 갑자기 의문이 들고 전부다 시시해졌다. 내 마음이 좁쌀처럼 좁아졌으니 소꿉친구들에게도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대로는 안돼!"라고 홀로 외치며 등산 모임에 가입을 했고, 매주 등산을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땀을 흘리고, 새로운 사회 친구들을 사귀면서 다시 활력을 찾았다. 모임 내 운영진까지 할 정도로, 나는 처음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다. 내가 현재 위태로운 지점에 있듯이, 누군가도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짐작하고, 같이 손을 잡고 등산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정말 열심히 등산을 했다. 서울에 있는 산, 지방에 있는 산까지 태어나서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한 적은 또 처음이었다. 등산과 달리기를 병행하면서, 비어있는 시간들을 채우고자 했다.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그때 위태로웠는 지를. 그리고 내가 위태로웠을 때, 함께 등산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를 해준 인연들이 나름 굉장히 기억에 남는 다는 것. 처방전은, 글쎄. 사실 작년의 일이긴 하다만, 열심히 한 만큼, 무언가에 지쳐서 자연스럽게 그 모임에서 나오게 되었고, 동시에 소꿉친구들과도 멀어졌고, 혼자 남겨진 상태에서 우연히 다가온 사랑과 마주 하게 되었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 그때, 정말 위험하고 정말 불안했구나. 그때 내가 만났던 사람들, 왜 이렇게 씁쓸하고도 애틋하고도, 가슴에 남아있는가. 나의 바닥, 나의 위태로움을 드러냈던 그 사람들, 아주 잠시 몇 개월 동안 함께 산을 오르고 달리기를 했던 그 사람들, 간혹 스쳐 지나간다. 이상하게 그리운 건 아닌데, 참 고맙다. 험한 산길도 서로 의지하며 무사히 잘 다녀왔고, 잘 먹고, 나름 즐거웠기 때문에.
또 맞이하겠지. 위태로운 순간들.
그럴땐 힘차게 외친다.
글 여미
커버 사진 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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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