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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의 종착역이었으면 좋겠어

나의 첫사랑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by 주하

그 사람과 첫사랑을 했다고 믿는다.

스무 살 여름, 그와 술을 한 잔 하다가 내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를 찢어주었다.


2024.08.02.
당신이 나의 종착역이었으면 좋겠어.


넓은 다이어리 맨 위에 간결하게 적힌 한 문장을 선물했다. 아마 그는 이 문장이 무엇을 뜻했는지 알 지 못 했으리라.


그 당시 나는 왠지 종종 불안했다. 여자의 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와의 연애는 항상 봄바람처럼 설레었지만 벚꽃잎처럼 위태로웠다. 우리는 서로 열렬히 애정하고, 증오했다. 남들 다 하는 20대 초반의 연애가 그렇듯, 뻔하고 의미 없는 질투와 자존심 싸움을 반복하며 사랑을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랑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눈 깜짝하면 없어질 듯한 청춘을 닮은 사랑이었다. 청춘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청춘은 마냥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지러운 궤도에서 빠져나오면 하염없이 그리워하게 되는 것 또한 청춘의 속성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 날 알았다. 말없이 마주 앉아 여름 밤의 공기를 맡으며 맥주를 마시는 우리의 지금이 훗날 내가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올릴 표지일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다. 언젠가 내 눈앞의 이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와 단둘이 조용히 앉아 맥주를 마시게 되는 날이 오면 지금 이 순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날의 내 대답은 ‘아니오’ 였다. 그렇게 그 날 그 순간이 내 마지막 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대로 죽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우울했다. 그와의 미래를 꿈꾸고 싶다거나 이별 하겠다거나 하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냥 딱 지금 이대로, 이 순간에 갇혀 영영 나오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와 함께하는 미래 혹은 이별이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지를 회피하려던 감정일지도 모른다.

종착역에 도착한 전철은 불이 꺼진다. 그리고 잠시 뒤 승객들은 모르는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진다. 눈 앞의 전차가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머지 않아 다음 열차가 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딱 그만큼 사랑하고 싶었다. 다음 사랑은 어떤 사랑일지 아직 모르지만, 첫사랑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랑이 첫사랑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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