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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돌 Aug 07. 2024

쉬운단어

누구나 아는 그 뜻으로 당신이 제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Ep. 8 쉬운단어

2019. 8. 27. Written by 여울돌

초등학생과 대화할 땐 쉬운 단어를 사용한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언어다. 잘 쓴 논문은 중학교 2학년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논문이라는 말을 최근에 들었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언어는 단순하다.


청소년 사업이든, 스몰토크든 청소년과 하는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소감과 느낌을 항상 물어본다. 그럼 십중팔구 나오는 대답은 '재밌어요' 혹은 '힘들어요' 둘 중 하나다. 역시나 똑같은 대답이 나왔네. 하고 말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물어봐야 한다.


어떤 것이 재미있었어요?


소통의 시작이다.


어떤 것이 '왜' 재미있었는지 물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아이들의 언어는 입체적이기에 힌트로 던지는 단어들을 잘 파악해서 꼬리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가령 요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재밌어요.'라는 대답을 한다면 어떤 것이 재미있었는지 재차 물어보는 작업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문장으로 끌어내서 그 말을 듣는 것이 어렵다면 단어라도 찾아야 한다.


활동과 연관되어 있는 단어일 수 있고 그들이 평소에 습관처럼 사용하는 단어일 수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그들의 언어를 빠르게 파악해 어떤 것을 느끼고 배웠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21년, 처음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로를 시작했을 때는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재택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에 나와 보급된 태블릿 혹은 핸드폰으로 수업을 들었는데, 이때 수업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여기서 처음 만난 A도 학교 수업을 어려워하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수학을 가르쳐줬다. 덧셈 뺄셈에 이어 조금 더 난도가 있는 곱하기와 나누기까지. 새로운 것 투성이었을 A에게 최대한 쉬운 언어로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사건은 발생했다.



하루는 A가 내 옆에 앉아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어찌나 뚝뚝 떨어지던지 적잖이 당황하며 A에게 물었다. "A, 선생님이 무슨 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대답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 대답이 없으니 더 미칠 노릇이었다. 나름 최대한 부드럽게 자상한 말투로 말했는데 A는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며칠 뒤 센터 선생님께 A의 성격에 대해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다문화 가정 청소년인 A는 평소 모르는 것을 선생님에게 물어보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며, 자존심이 강해 모르는 것을 주변 선생님이 먼저 알려주는 것에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문득 중학교 수학도 몰라 어려워하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내가 주마등처럼 스치며 아차 싶었다. A에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구나, 모든 언어가 새로울 수 있었겠구나.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


그때부터 A에게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했다. 모르는 문제에 막혀 있어도 먼저 물어보기 전까지 기다리기, 스몰토크를 통해 공부 이외의 것들에 대해 알아가며 친해지기 등 시간은 더 오래 걸렸지만 나중엔 누구보다 친해질 수 있었다. 하루에 해야 할 문제집 분량을 모두 끝내면 양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신나게 놀았다.


어른도 그렇듯 아이들의 '그냥'은 그냥이 아닌 경우가 많았고, 뒤에 숨겨져 있는 속 뜻을 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면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인데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쉬운 단어를 마음에 담아

당신에게 드립니다.


누구나 아는 그 뜻으로 

당신이 제 마음을 알아주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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