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혼자 살아보기 (세 번째 이야기)
나는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실천에 앞서 주변에 말하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일단 주변에 퍼뜨리고 나면 말한 게 있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건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에게 말하고 다닌다.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그때 말한 건 어떻게 되어가냐고 물으면 게을렀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 실천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번 통영살이 계획도 주변 여기저기에 많이 퍼뜨리고 다녔다. 친한 친구에게 이 계획을 말하자 친구는 내가 통영에 가면 놀러 오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정말로 통영에 왔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겨우 시간을 내어 잠도 아껴가며 통영까지 내려왔다. 1박 2일 같은 2박 3일이었지만 우리는 나름 알차게 보냈다.
내가 통영에 온 목적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주로 마을을 산책하거나 카페에서 작업하고 책방과 미술관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친구가 통영까지 왔는데 이를 기회 삼아 함께 통영을 여행하기로 했다. 나도 드디어 여행다운 여행이라는 걸 할 수 있었다.
온전히 혼자 만든 추억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나눈 추억이 감정을 더 짙게 파고든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여기저기를 다니며 친구와 뚜벅이 여행을 하였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곳이 있으면 발길을 멈추기도 하고 때론 계획대로 움직이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한 통영 여행 중 뭐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중 하나는 다찌집이다.
통영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다찌집이 뭔지 몰랐다. 통영 여행을 찾다 보니 다찌집 관련 포스팅이 많아서 알게 되었다. 다찌집은 그날의 식재료에 따라 주인 마음대로 상을 차려준다. 정해진 메뉴가 있지 않고 인당 가격으로 계산하며 당일 재료 상태에 따라 안주가 매번 달라진다. 주류와 음료는 별도이다. 술을 몇 병 포함해서 인당 가격으로 매겨진 곳도 있다.
우리는 진짜 통영을 경험하기 위해 비교적 포스팅이 적으며 구석진 곳에 있는 다찌집으로 골랐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식당엔 아무도 없었다. 주문 방법은 간단하다. 인원수를 말하고 술을 주문하면 된다.
떠날 땐 혼자였지만 여행 중 재밌거나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를 떠올려 보면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기본 안주가 차려졌다. 역시 바다 근처라 그런지 해산물이 많았다. 기본 안주가 이것저것 나오는 포차 같은 느낌이었다. 친구와의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 핸드폰으로 타임랩스를 켜놓고 음식이 가득한 테이블과 우리가 먹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영상을 다시 보니 테이블에 안주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고 우리는 멈추지 않고 먹고 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도 몇 개 있었다. 통영에서 처음 맛본 방아로 만든 음식도 있었다. 방아는 특유의 향이 나는 식재료이다. 마치 외국 향신료처럼 향이 너무 강해서 못 먹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강렬한 맛이 풍기는 방아로 만든 부침개가 안주로 나왔다. 역시나 맛은 강렬하고 짜릿했다. 친구는 처음 맛보는 방아 부침개를 먹고 잠시 멈칫하다가 어느새 적응했는지 잘 먹었다. 옆 테이블을 보니 짜릿한 방아 향에 놀랐는지 방아전을 옆에 빼놓고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다찌집에서는 술을 시키면서 안주가 없다고 하면 조금씩 뭘 내어 주신다. 소주를 마시다 보니 국물이 당겨서 사장님께 국물 있는 거 조금만 달라고 부탁하니 사장님은 바로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뒤적이셨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묵 있는데 어묵탕 끓여줄까?"
우리는 당연히 좋다고 말했고 얼마 되지 않아 얼큰한 어묵탕이 나왔다. 친구와 계속 소주잔을 부딪치며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어느새 시간은 흘러 식당엔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바빠진 식당은 음식을 충당하기 위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안주를 만들면 우리 테이블에도 조금씩 나눠 주었다. 다찌집은 어떤 안주가 나올지 모르며 계속 술을 시키면 안주가 나오는 그런 곳이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식당은 북적북적 시끄러워졌고 우리의 대화도 점점 무르익어 갔다. 진솔한 대화 속 여러 감정이 교차하며 친구와 내면의 관계가 더 깊어져 갔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선한 방식의 다찌집이 인상적인 것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나눈 친구와의 진한 대화가 있었기에 이 추억이 더 강렬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다.
온전히 혼자 만든 추억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나눈 추억이 감정을 더 짙게 파고든다.
그동안 나는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주위엔 항상 누군가가 있었다. 말레이시아 여행에서는 지하철을 어떻게 타는지 몰라 방황할 때 친절한 현지인이 길을 알려주고 직접 사비로 지하철표까지 구매해 준 따뜻한 에피소드가 있다. 중국에서는 지나가는 중국인을 붙잡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는데 나에게 역동적인 포즈를 요구하며 굉장히 열정적으로 촬영해 주어 재밌었던 경험이 있다. 라오스에서는 백패커에서 친구를 사귀어 함께 클럽에 가고 액티비티를 하였다.
떠날 땐 혼자였지만 여행 중 재밌거나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를 떠올려 보면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이번 통영 여행도 어떻게 보면 온전히 혼자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친구가 통영으로 와준 덕분에 나도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진짜 통영을 경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