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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Yeouul Oct 29. 2022

통영 살기 첫째 날 캐리어 분실 사고

통영에서 혼자 살아보기 (첫 번째 이야기)

홀로 통영 살기를 해보기 위해 통영으로 떠났다. 12박 13일 일정을 살아본다고 표현하기엔 짧지만, 한 곳에 머무르며 나름 단골집도 생기고 온종일 숙소에서만 머무르기도 하고 나름 나만의 방식대로 통영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첫날부터 사고가 터졌다. 캐리어를 분실했다.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 보려고 한다.



나는 통영에 가기 위해 교통수단으로 버스를 선택했다. 오랜만에 타는 고속버스라 놓칠까 봐 긴장하여 일찍 나왔더니 생각보다 여유롭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꽤 긴 여정이기에 나는 캐리어를 챙겨 왔다. 버스를 타기 위해 캐리어를 끌고 넓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헤집고 다녔다. 터미널이 생각보다 넓어 헤매고 있을 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서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행선지와 출발 시간을 잘 확인한 후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내가 탈 버스가 보였고 버스 짐칸 바로 앞에는 캐리어 두 개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버스를 탈 때 캐리어나 큰 짐은 버스 밑 공간인 짐칸에 보관해야 하며 가방과 같은 작은 짐은 들고 탄다.



나는 사실 이런 버스를 타본 지가 거의 10년 만이다. 주로 기차나 KTX, 비행기를 이용한다. 출발 시간 10분 전에 버스에 도착했고 주변엔 아무도 없고 캐리어 두 개만 짐칸 옆 바닥에 놓여 있었다. 이걸 보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캐리어를 짐칸에 직접 넣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앞에 놔둬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때 갑자기 공항버스가 떠올랐다. 공항버스를 탈 때는 내가 캐리어를 넣으려고 하면 기사님께서는 막 넣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직접 캐리어를 짐칸에 넣어 정리해주신다. 이것도 같은 시스템인가 생각했다. 마침 버스 짐칸 앞에 캐리어 두 개가 놓여 있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 옆에 두었다. 별 의심의 여지없이 버스에 올라탔고 4시간 후 통영에 도착하였다.







통영에 도착하여 내 짐을 찾기 위해 버스 짐칸으로 갔는데 내 캐리어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캐리어가 없다며 기사님께 항의하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짐칸 앞에 놓여 있던 캐리어 두 개가 이분들 것이구나. 그제야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아주머니 두 분은 몹시 화가 난 상태였고 기사님도 기사님대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나는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 나는 그 누구의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일단 아주머니 두 분을 진정시키고 기사님께 상황을 설명한 후 우리 캐리어가 무사한지 먼저 확인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다행히도 캐리어 세 개가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한시름 놓았다. 분실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려 모두 짐을 찾고 떠날 때 내 캐리어는 보이지 않아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대로 나의 통영 여행은 끝난 건가 참으로 암흑이었다. 그런데 캐리어가 그대로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그럼 이제 그다음 스텝을 밟아야 한다. 캐리어가 무사히 있는 걸 확인했으니 통영으로 가져올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기사님께 통영으로 오는 다음 버스에 싣고 올 수 있는지 여쭤봐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내 잘못이다. 짐을 끝까지 확인하지 않고 방치한 내 잘못이 크다. 다행히 다음 버스에 싣고 올 수 있다고 하여 상황이 잘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통영에 도착한 게 거의 정오였는데 내 캐리어를 실은 버스는 저녁 7시가 넘어 도착한다고 했다. 거의 7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지만 괜찮다. 짐만 무사히 돌아온다면 10시까지도 기다릴 수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머니 두 분도 공항버스만 타고 다녀서 기사님이 짐을 직접 넣어주는 시스템인 줄 알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분들이 기사님께 몹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통영 첫날 액땜을 한 거로 생각했다. 나는 장기 여행이라 괜찮지만, 아주머니 두 분은 2~3일 여행을 온 건데 첫날부터 일이 꼬였으니 화가 날 만도 하셨다. 이분들은 나에게 어쩜 이렇게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냐며 고맙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실 나도 내 짐을 찾는 게 가장 중요했고 화를 내봤자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짐을 기다리기 위해 나는 통영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일단 허기진 배를 먼저 채우기 위해 근처 식당을 알아봤다. 통영 터미널 근처 맛집을 찾아보니 다소 생소한 음식인 뼈짬뽕이 있었다. 안 그래도 오랜 시간 버스를 타서 조금 얼큰한 게 당겼는데 내가 좋아하는 짬뽕과 뼈해장국의 조합이라니 안 먹어 볼 수가 없었다.







캐리어 분실 사건으로 심신이 취약해진 상태였다. 배라도 채워야 기운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식당으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뼈짬뽕을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은 비교적 빨리 나왔다. 고기가 잔뜩 붙은 뼈가 위에 올려져 있었고 자작한 국물 안에는 짬뽕 면이 숨어 있었다. 식당을 잘 고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물을 먼저 맛보았는데 묘하게 짬뽕과 감자탕이 섞인 느낌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뭔가 익숙한 맛의 조합이었다. 국물을 떠먹는 순간 바로 소주가 생각났다. 사실 누군가와 함께 있었으면 소주를 한잔했을 텐데 대낮부터 혼자 처량하게 소주를 마실 순 없었다. 그리고 캐리어를 기다리려면 통영 시내에서 7시간을 버텨야 했기에 나의 상태를 피곤하게 만들면 안 됐다.







캐리어 사건으로 급격히 피곤해진 몸과 컨디션을 뼈짬뽕으로 충전해주었다. 그래도 배가 차니 기운이 났고 앞으로 6시간을 어떻게 때울지가 관건이었다. 일단 통영에 왔으니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터미널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바다가 있었다. 바다 옆으로는 많은 식당과 카페가 있었고 나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카페에서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글을 썼고 통영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행여나 다시 또 내 짐을 잃어버릴까 봐 버스 도착 예정 시간보다 30분 일찍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 가니 아주머니 두 분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이렇게 우린 짐을 찾기 위해 다시 만났다. 버스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고 우리 셋은 무사히 짐을 찾고 헤어졌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고 나는 버스를 타고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이렇게 나의 통영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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