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1박 2일 평창 여행 (네 번째 이야기)
1박 2일 평창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첫째 날은 패들보드를 타고 글램핑장에서 바비큐를 했다. 둘째 날은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현지인 추천 맛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새 오후를 훌쩍 넘겼다. 서울에 올라가면 저녁 시간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평창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패러글라이딩하러 가기 전에 카페에 들러 카페인을 섭취했다. 조용하고 텅 빈 카페에 앉아 있는데 평창 여행안내 브로슈어가 눈에 띄었다. 평창에 또 뭐가 유명한가 살펴보는데 특이한 곳을 발견했다. 강원도 평창에 캐나다인이 운영하는 수제 맥주 펍이 있다는 글이었다. 아니 캐나다인이 서울도 아니고 왜 이 한적한 평창 산 아래에서 펍을 운영하는 것인지 신기하고 궁금했다. 이건 마치 한국 사람이 호주 한적한 동네에서 막걸리를 제조하는 느낌이랄까.
패러글라이딩도 하고 허기진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뭔가 목을 축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가족들에게 이곳을 가자고 제안했다. 가족들도 평창에 이런 곳이 있냐며 모두 찬성하여 우리의 평창 여행 마지막 행선지로 정했다.
어떤 게 우리 인생에서 마음을 요동시키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새로운 경험을 제안하면 함께 손바닥을 맞부딪혀보자.
분명 내비게이션을 잘 찍고 가는데 온통 주변에는 초록색 나무로 우거진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설마 내비게이션이 잘못됐겠냐는 생각에 내비게이션만 믿고 잘 따라갔다. 가는 길 내내 계속 자연만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고 주차장엔 차가 꽤 많았다. 제대로 온 듯한 느낌이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보니 호주 와이너리가 떠올랐다. 호주는 땅이 넓고 평야로 되어 있는 곳이 많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리다 보면 보이는 거라곤 그저 자연과 동물뿐이다. 제대로 가는 게 맞나 싶다가도 창밖의 양 떼와 소 떼를 보면 그저 신기하다. 그렇게 자연의 경치를 구경하면서 내비게이션을 믿고 가다 보면 넓은 자연 가운데에 누가 봐도 여기가 와이너리구나 하는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건물로 들어가면 와인 테이스팅 하는 곳이 있고 와인을 구매할 수도 있다. 레스토랑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곳이 많으며 포도밭 경치를 안주 삼아 와인 마시기에 좋은 곳이다. 평창 화이트 크로우 브로잉에 도착하니, 호주에서 경험한 와이너리가 떠올랐다. 호주 와이너리를 가본 엄마도 이에 동의하셨다.
화이트 크로우 브로잉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평창에서 흔히 보는 배추밭이 옆에 있고 산의 맑은 공기로 가득 찬 곳이다. 넓은 정원에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리고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이 이곳의 활기찬 에너지를 더해주었다. 도착하자마자 가족들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어떻게 여기에 이런 곳이 있냐며 다들 구경하느라 바빴다.
수제 맥주 가게답게 맥주의 종류가 다양했다. 오미자나 얼그레이 홍차가 은은하게 가미된 특이한 맥주도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주문했다.
나는 맥주를 마시자마자 또다시 호주가 떠올랐다. 호주에 있다가 한국에 오면 그리운 것 중 하나가 호주 맥주이다. 호주는 지역마다 생산하는 맥주가 있으며 그 종류는 어마어마하게 다양하다. (1)한 조사에 따르면 호주에서 맥주를 제조하는 곳이 740군데나 된다고 한다. 호주 맥주는 지역과 회사마다 깊이와 맛, 풍미가 모두 다르다. 호주에서 야외 테라스에 앉아 마시는 생맥주는 정말 그야말로 감탄 그 자체이다.
2021년에 한국에 잠시 머물면서 호주 맥주가 그리웠는데 평창에서 그 마음을 달래게 될 줄을 생각도 못 했다. 물론 맥주 맛도 좋았지만, 주변 경관이 이를 더해주었다. 코로는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입으로는 수제 맥주를 들이켜니 그 맛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우리의 평창 여행은 끝이 났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불현듯 여행 계획을 세우고 며칠 뒤 정말 이렇게 평창에 가서 많은 경험을 하였다. 뭐가 시작이었을까. 가족 식사가 없었으면 여행을 가지 못했겠지. 누군가 여행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계획하지 않았겠지.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시작되려면 맞부딪히는 게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이런 이야기가 오가도 시간이 없다느니 다음에 가자느니 미루기 바빴다. 친구와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시간 맞추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다. 같이 갈 사람이 없으니 그냥 혼자라도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 많아졌다. 모두 다 비슷한 생각을 하며 세월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나온 김에 가자."
"시간은 만들어야 해. 항상 없어."
여행을 가자고 제안할 때 요즘은 주위에 이런 반응이 더 많아졌다. 코로나로 인해 갇혀 있었던 시간이 많아서 그런 건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건가. 어떤 게 우리 인생에서 마음을 요동시키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새로운 경험을 제안하면 함께 손바닥을 맞부딪혀보자. 제안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맞부딪히는 사람이 있어야 시작이 된다. 본인이 제안하는 사람이 될지 맞부딪히는 사람이 될지는 누구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지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가족 혹은 친구, 연인에게 말을 건네보자.
"여행 갈래?"
"갑자기?
"응! 갑자기."
(1) 출처: http://craftbeerreviewer.com/the-brewery-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