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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Yeouul Oct 29. 2022

통영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통영에서 혼자 살아보기 (두 번째 이야기)

내가 통영에서 13일 동안 머문 곳은 통영시 산양읍에 위치한 '보편적 스테이'이다. 이곳을 선택한 데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숙소 옥상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때문이다. 통영까지 왔으니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지내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기 때문이다. 내가 통영에 온 가장 큰 이유는 고요한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마을을 선호했다.




여행에서 득과 실을 따지기보단 가끔은 이유 없이 마음을 비우고 여행을 떠나보자. 그곳에서 배운 예상치 못한 감정이 내 삶에 성장과 과정이 되기도 한다.




동네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숙소 맞은편에 작은 낚시 슈퍼만 있었다. 숙소에서 10~15분 정도 걸어가면 게스트 하우스와 펜션이 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길을 걷다 가끔 마주치는 사람은 연세가 지긋이 드신 동네 주민이었다.







숙소에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학교와 작은 가게가 있는 마을이 나온다. 둘째 날은 걸어서 마을까지 가보기로 했다. 9월이라 비교적 날씨가 괜찮을 거로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너무 습하고 더웠다. 걸어가는 내내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반 정도 왔을 때 등은 땀으로 다 젖고 도로 한가운데에 갇혀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나에겐 두 가지 선택만이 남았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했다. 나의 선택은 역시나 직진이었다. 내 인생에서 웬만하면 유턴은 없다.







그렇게 땀을 쏟아내며 가다 보니 어느새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귀여운 벽화를 보니 더위로 지쳤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나는 잠시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벽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길의 끝엔 경찰서가 있었고 벽에 그려진 그림은 경찰관과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었다. 뭔가 사건 사고보다는 서로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그런 따뜻함이 묻어나는 곳 같았다.



나는 여행할 때 웬만하면 뚜벅이를 선호한다. 1시간 거리는 기본적으로 걸어 다닌다. 걸으면서 길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것을 좋아한다. 별거 아니지만 오래된 가게라든지 옛날 버스 정류장 이정표나 마을을 연결해주는 골목길 이런 소소한 게 좋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이런 정서야말로 그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걷다 보니 학교도 있고 슈퍼도 있고 미용실도 있었다. 그런데 왜 카페는 안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젠 좀 어디 들어가서 땀이라도 식히고 싶었다. 희망을 잃어가는 찰나에 저 멀리 카페라는 글자가 보였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주택을 개조한 카페인데 사장님의 감성이 묻어나는 아기자기한 소품과 빈티지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쨍한 햇빛 아래에서 거의 1시간을 걸었더니 뭔가 나에게 보상해야겠다는 생각에 커피보단 달콤한 팥빙수를 주문했다. 7,000원이라 1인분의 아담한 사이즈를 기대했는데 굉장히 푸짐한 팥빙수가 나왔다. 사장님 마음대로 팥도 듬뿍듬뿍 얹고 미숫가루와 토핑을 넉넉히 넣어 주셨다.



카페에 앉아서 팥빙수를 먹으며 땀을 식히고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니 손님이 한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고 한적한 동네라 손님은 거의 마을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이곳이 마치 마을 주민들의 작은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나는 논과 밭이 있는 강원도 철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8살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기에 철원에서 보낸 기간이 다소 짧긴 하지만 어린 시절에 쌓인 정서 때문인지 이렇게 한적한 시골을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렸을 때 다녔던 동네 슈퍼와 길거리의 풍경은 여전히 나의 기억과 마음속에 잔잔하게 남아 있다.







통영 산양읍 마을을 거닐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곳이겠지만 예전에 이곳을 살았던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묻어나는 장소이다.



통영에서 지내는 13일 동안 나는 브이로그를 만들기 위해 영상을 많이 찍어 놨었다. 통영살이를 생생히 기억하기 위해 단순히 나의 일기 같은 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렸다. 내가 만들었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다. 열심히 영상은 찍었는데 그냥 지우기는 싫고 가끔 생각날 때 보려고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누가 볼 거라고 별로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어떤 댓글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예전에 살았던 동네라며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반갑다고 하였다. 우리 가족도 재미없다고 안 보는 내 브이로그인데 누군가는 이 영상을 보며 예전 추억이 떠올랐다고 하여 내심 뿌듯했다.



나를 찾는 여행, 생각을 정리하는 여행, 럭셔리 여행, 관광 등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별생각 없이 마음이 내키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좋을 때도 있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동네나 살아보고 싶은 지역 혹은 아무런 정보도 없는 곳을 가보는 것도 좋다. 여행에서 득과 실을 따지기보단 가끔은 이유 없이 마음을 비우고 여행을 떠나보자. 그곳에서 배운 예상치 못한 감정이 내 삶에 성장과 과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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