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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Yeouul Jan 23. 2024

호주 멜버른에 산다는 건

호주에 산지 벌써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는 현재 호주 시민권도 영주권도 없다. 10년이나 살았는데도 영주권 얻기 힘든 나라는 아니고 애초에 나의 계획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호주 산지 9년이지만 아직 영주권은 없어요>라는 제목으로 지난 글에서 설명하였다.



호주 멜버른에 산다는 건 어떨까. 내가 호주로 떠나기 전 한 번쯤 상상해 봤지만 어떤 모습일지 내 머릿속에는 그려지지 않았다. 경험해보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 미디어를 통해 보던 장면이 있을지라도 그저 남일 같이 느껴졌을 뿐이었다.





최근에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봤는데 멜버른 해변, 크리스마스 파티, 카페에서 브런치, 멜버른의 벽화 풍경, 우연히 찾은 젤라토 맛집 등 특별한 것 없는 나의 멜버른의 삶이 담겨 있었다. 사실 별거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이지만 호주라서 가능한 모습이라는 생각에 이번에는 아주 단순하고 무난한 나의 멜버른 일상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호주 멜버른에 산다는 건
나를 위해 살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해 준다.





현재 1월인 멜버른은 여름이다. 사실 12월부터 30도 넘는 날씨로 비치엔 사람들로 붐벼야 했지만 이번 여름은 늦게 다가왔다. 요즘 그나마 여름에 걸맞은 날씨를 되찾았고 파란 하늘과 뜨거운 햇살이 비추는 날에는 공원이나 바다로 놀러 나간다.



멜버른은 바다가 가깝기 때문에 햇살이 좋은 날에 즉흥적으로 바다에 가기에 좋다. 물에 들어갈 때도 있고 해변이 보이는 카페나 바에 앉아서 커피나 생맥주를 마시며 따스한 날씨를 만끽하다 보면 새삼 멜버른에 사는 게 더 풍요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평일에는 특별할 것 없다. 남편이 일 끝나고 집에 오면 4시 반쯤 되고 저녁은 6시 전에 먹는다. 저녁을 먹고 나도 7시가 되지 않는데 보통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며 한가로운 저녁 시간을 보낸다. 요즘은 남편과 모바일 게임에 빠져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잘 때까지 게임을 한다. 가끔은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가기도 하는데 마지막 평일 저녁 산책이 언제였는지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호주는 한국과 다르게 동네에 슈퍼나 편의점이 많지 않아 평일 저녁에는 차를 끌고 장을 보러 나가기도 한다. 차를 타면 가까운 거리인데 호주는 주택단지로 이루어져 있어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 거리에 있기에 저녁에 걸어서 마트를 가기엔 불편하다. 또한 그때그때 먹을 것을 사기보단 한 번에 장을 미리 봐서 팬트리나 냉장고에 보관하는 문화여서 물건을 많이 사기 때문에 차가 필수이다. 요즘에는 배달이 활성화되어 때때론 마트 배달을 시키기도 한다.





주말에는 주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나와 남편은 동갑인데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멜버른에 살고 있고 아내도 모두 동갑이며 우리는 20대에 만나 함께 술 마시며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세 커플이 자주 만나며 보드게임도 하고 공원에 소풍을 가거나 여행도 함께 다닌다.



명절, 크리스마스 등 중요한 날에는 항상 함께 모여 따뜻함을 나누고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자주 만나서 바비큐를 하며 호주의 흔한 일상을 즐긴다. 최근에는 한 친구가 낚시에 빠져 장어를 잡아와 우리에게 대접해 주기도 했다. 바다가 가깝기 때문에 호주에서 낚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취미 생활 중 하나이다.





친구들과 이렇게 북적북적 보내는 날이 있는가 하면 남편과 둘이 보낼 때는 쇼핑몰에 가거나 맛집을 탐방한다. 멜버른은 유명한 브런치 맛집이 많다. 그렇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항상 배고픔에 굶주린 나는 이를 참지 못해 집에서 아침을 푸짐하게 먹어 매번 브런치를 놓친다. 그래도 가끔 큰맘 먹고 가곤 한다.



멜버른에는 베트남, 태국, 중국 등 다양한 나라의 맛있는 음식 또한 맛볼 수 있다.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멜버른에는 거의 현지 맛에 가까울 정도로 맛있는 식당이 많다. 한식도 이에 포함된다.





사실 한국에서 지내는 것과 비교해 봤을 때 크게 다를 건 없지만 호주의 감성과 분위기 때문인지 일상이 다르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고 조금 유명하다 싶으면 웨이팅이 기본인 한국과는 다르게 호주는 여유롭고 한적하다. 또한 서울 도심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한국과는 다르게 호주는 외곽이 잘 발달되어 있고 그곳마다 핫플레이스가 존재한다. 호주 시티 중심인 CBD는 주차도 불편하고 사람들이 너무 북적이기 때문에 주말에 나들이를 갈 때는 항상 외곽으로 간다.



2년 전 브런치에 <호주에 살면 좋은 점이 뭐예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는데 나의 브런치 글 중에 처음으로 최단 시간 1,000회를 돌파하고 현재는 8,783회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 글을 읽었으며 지금까지도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는 호주에 사는 게 이미 익숙해지고 너무나 지극히 똑같은 일상인데 가끔 나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며 주변에서 호주에 사니깐 좋겠다는 반응에 어느 정도 이를 인정하며 덤덤하게 쓴 글이었다.





지금 이 글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호주에 산다고 대단히 특별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니지만 호주이기에 누릴 수 있는 분명 다른 삶의 질은 있다. 명절, 경조사, 모임 등 정해진 일정에 맞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날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한국과 다르게 호주에서는 온전히 나를 위해 쏟는 시간이 많다. 그리고 호주는 하우스 문화여서 밖에서 만나기보단 주로 집에서 만나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한다. 그래서 외식비 부담이 없고 밖에 나갈 때 치장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쇼핑에 돈을 많이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가족과 떨어져 있어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기댈 곳이 마땅히 없어 어려운 상황이 닥치기도 하고 익숙지 않은 외국 문화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





이 글을 마무리 지어보자면 호주 멜버른에 산다는 건 나를 위해 살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해 준다. 한국에 있을 때는 대학도 사회 시선에 맞춰 무조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제대로 된 직업이 없으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 같았고 나이가 드니깐 결혼과 출산에 얽힌 얘기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외모에 신경 쓰지 않으면 자신을 관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사회 속에서 나는 어느 불특정 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스스로 나 자신을 위해 살기가 약간 버거웠다. 물론 이 모든 걸 신경 쓰지 않고 나만 바라보고 살면 되지만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상 그게 쉽지 않았다. 호주에 와서 크게 달라진 점은 자존감이 올라가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맞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가끔 예기치 못한 일에 우울하고 스트레스받는 날도 있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사실 행복도 느낄 수 없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평범하면서 행복한 일상은 무엇인가. 특별하든 무료하든 보통이든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은가.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Instagram: @yeouulart@yeouul_illustrator

Youtube: 여놀자(yeonolja)여울여울

Website: https://yeouul.creatorli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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