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1박 2일 목포 여행 (두 번째 이야기)
4월 초 엄마와 함께 목포 여행을 떠났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내려놓고 어디를 갈까 고민했다. 즉흥적으로 온 여행이어서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목포까지 왔는데 뭐라도 해야 했다.
기억의 이변이 있기에 지난 여행을 곰곰이 떠올리다 보면 잊고 있었던 추억이 생각나고 이것이 지루한 일상에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의지하는 건 인터넷 검색이다. 검색창에 '목포 여행', '목포 가볼 만한 곳'을 검색했다. 블로그에는 케이블카 후기가 많았다. 목포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며 중간 경유지에 들러 관광하는 묘미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첫 행선지는 케이블카로 정했다.
목포에 도착했을 때부터 오던 비는 계속해서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 건 아니어서 우산을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그런 날씨였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버스가 해안가를 달리기 때문에 나름 경치 구경도 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케이블카까지는 3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
우리가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도착한 곳은 북항 스테이션이었다. 종일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인지 뭉게뭉게 구름이 산 중턱까지 내려와 감싸고 있었다. 거리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있고 케이블카 너머로는 구름에 둘러싼 산이 보여서 전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티켓을 구매하고 우리는 케이블카에 올라탔다. 그런데 블로그에서 봤던 멋있는 목포 전경은커녕 온통 하얀 구름 속을 달리기만 했다. 날이 흐려도 너무 흐렸다. 뿌연 안개를 뚫고 간신히 케이블카가 전진하는 모습만 보였다. 안개가 얼마나 자욱했으면 맞은편에서 돌아오는 케이블카가 가까이 다가와야지만 보였다. 케이블카 티켓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닌데 내가 이 자욱한 안개를 보기 위해 이 가격을 지불했나 생각이 들며 약간 아쉬움이 남았다.
여행할 때 특정 장소를 갔는데 생각보다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면 나는 오히려 그곳에 더 머무르려고 한다. 어떤 감정이 솟아오를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스테이션은 총 세 개로 구성되어 있다.
북항 스테이션 - 유달산 스테이션 - 고하도 스테이션
블로그에서 추천하기를 유달산은 돌아오는 길에 들르고 고하도로 바로 가는 걸 추천했다. 나도 블로그를 하기에 블로그 조언을 상당히 믿는 편이다. 블로그의 추천대로 우리는 유달산을 지나치고 고하도에서 내렸다. 비가 내려 땅은 질퍽질퍽 젖어 있었지만, 도보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고하도는 해안 길을 따라 산책로를 잘 만들어 놔서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그렇지만 비가 와서 해안 길 산책은 포기하고 우리는 바로 고하도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 건물 외관 디자인이 굉장히 독특했다. 마치 블록을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은 듯한 구조이다. 건물 안에는 층층이 전시관이 있으며 전망 공간도 곳곳에 아주 잘 마련되어 있었다.
안개로 자욱하여 뭐가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전시를 관람하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었다. 전망대 맨 위층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케이블카로 가기 위해 내려오니 1층에 카페가 있는 걸 발견했다. 해안 길 산책도 못 했는데 아쉬운 대로 카페에 머물러 고하도의 분위기를 더 만끽해 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여행하면서 생긴 나만의 습관이 있다. 여행할 때 특정 장소를 갔는데 생각보다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면 나는 오히려 그곳에 더 머무르려고 한다. 벤치에 앉아서 경치를 감상한다든지 카페에 들러 음료를 마시며 그곳의 분위기를 더 마음에 담아본다. 그러다 보면 아쉬운 마음은 사라지고 내가 머문 곳에서 느낀 여유와 편안함 그리고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감정만이 내 머릿속에 잔잔히 남는다.
나는 웬만하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이런 나의 성격도 한몫하겠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이왕 돈 낸 거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그 순간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별로 돈이 아까운 여행은 없었다. 여행하면서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입장료도 지불해야 하고 티켓값도 내야 한다. 가끔 여행 후기를 보면 돈이 아깝다는 글이 종종 있다. 그곳에서 충분히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에 가성비를 따지게 되는 것 같다. 어차피 이미 낸 돈이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다면 그 자리에 더 머물러 보자. 어떤 감정이 솟아오를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고하도 전망대 1층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 창밖이 보이는 바 테이블에 앉아 비 내리는 바다 풍경을 한동안 감상했다. 흐린 날씨 때문에 저 멀리 풍경은 보이지 않았지만, 안개가 수면 위를 덮은 잔잔한 바다를 보는 것도 좋았다.
카페에서 나오니 비가 어느 정도 그친 듯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탔고 우리가 온 길을 다시 돌아갔다. 고하도로 올 때 지나쳤던 유달산을 들렀다. 유달산도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밖에 나가 봤는데 자욱한 안개로 걷는 것 자체가 너무 험난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당황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안개 속을 뚫고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분들은 우리를 보며 지금 올라가면 안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안개 때문에 길이 너무 험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그분들도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린 다시 스테이션 안으로 들어 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스테이션에 있는 전망대나 둘러보기로 했다. 날씨가 이러하니, 유달산 스테이션에는 사람이 없었다. 텅 빈 건물을 엄마와 나 단둘이 돌아다니며 구경할 게 있나 요리조리 찾아보았다. 위로 올라가 보니 유달산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사방은 온통 하얀 안개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구름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이렇게 유달산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우린 다시 북항 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안개가 좀 걷힐까 기대했는데 오히려 아까보다 더 심각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케이블카를 지탱하고 있는 줄 뿐이었다.
엄마와 나는 계속 '와~!' 소리만 연발하며 어떻게 안개가 이렇게 우리 주변을 하얗게 온통 뒤덮을 수 있는지 신기해했다. 올라갈 때만 해도 내가 이 안개를 보려고 케이블카를 탄 건가 살짝 아쉬웠는데 이 광경은 마치 영화 속에나 나올 법만 지옥행 케이블카를 탄 듯했다. 나름 진귀한 광경이었다. 다음에 어떤 케이블카를 타도 절대 불평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보다 더 안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여행은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중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지가 중요하다.
여행은 참으로 신기하다. 케이블카의 묘미는 경치인데 아름다운 경치는커녕 빗방울로 범벅된 유리창에 안개까지 더 해져 제대로 된 목포 전경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기억에 남는 건 온통 사방에 하얗게 둘러싸인 안개뿐이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렇게 혹독한 상황일수록 기억에 더 많이 남는다. 이날을 생각하면 엄마와 나는 입을 맞춘 듯 똑같이 말한다.
"진짜 안개가 자욱했어."
"아무것도 안 보였어."
"그런 건 진짜 처음 봤어."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멋진 경관을 보고 이쁜 곳을 가야만 반드시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는 건 아니다. 누구와 어떤 추억을 나눴고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여행이 내 기억 속에 더 많이 머무를지 아닐지가 정해진다.
이 밖에도 목포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드라마 호텔델루나의 촬영지인 근대역사관도 방문하고 현재는 카페로 운영하는 적산가옥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쌀쌀한 날씨로 차가워진 몸을 녹이기도 했다. 오래된 건물 사이사이 이쁜 카페와 식당이 줄지어 있는 근현대 거리를 산책하고 목포진지에 올라가 케이블카에서 보지 못했던 목포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뿌연 안개로 가득했던 지옥행 케이블카 말고도 좋았던 추억이 많았지만 희한하게 케이블카가 왜 이번 여행에서 내 기억 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지 모르겠다. 역시 여행은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중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지가 중요하다. 이 추억은 엄마와 나만이 생생히 기억하는 강렬한 기억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이미 큰 감정이 피어난다. 이런 기억의 이변이 있기에 지난 여행을 곰곰이 떠올리다 보면 잊고 있었던 추억이 생각나고 이것이 지루한 일상에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