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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 빨간 지붕

자신이 지나온 인생 속 틈을 메워가는 이야기.

by 여울LEE

나, 여기로 오길
잘한 것 같아.

마음이 채워지는
빨간 지붕 집으로.
/


[ © 여울LEE / 창 밖, 그리웠던 풍경 ]



싱그러운 초록잎들이 바람 따라

기분 좋은 몸짓을 보이던 한적한 시골길 위.

시간의 결을 여유롭게 스쳐 지나가는

버스 한 대가 보였다.


그 버스 맨 뒷자리엔, 사랑의 시선으로

창 밖 풍경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던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모두 비슷하게 생긴 듯한

돌멩이, 나무,독대, 낮고 작은 집들이

보일 때마다 기쁨의 황홀함


그 여자의 입꼬리를

여러 번 바짝 올라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자는 나지막이 창 밖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오랜만이야. 그리웠어."



[ © 여울LEE / 파란 대문, 빨간 지붕과 마주한 여자 ]



버스가 마을 입구 앞 정류장에 멈추자,

여자는 버스에서 익숙하고도 가뿐한

걸음으로 내려왔다.


저기 멀리 작게 보이는 빨간 지붕 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왔어. 드디어."


입구에서 빨간 지붕 집까지 걸어가는

여자의 표정에선 낯설지 않은 기대감이

넘실대고 있었는데, 이는 보는 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한 행복감 그 자체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골길을 정겹게

걸어가다 보니, 여자의 앞에 아늑함을 풍기는

빨간 지붕 집이 나타났다.


빨간 지붕을 감싸 안아주던

파란 대문은 세월을 보내오며 조금 녹슬고,

약해져 있었지만.


여자를 있는 힘껏 반겨주 듯.

끼익 - 힘찬 소리도 내어주었다.


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 선 여자는

그 자리에 가방을 툭, 떨어트릴 만큼


두 눈에 추억이 섞인 감정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모든 게 그 시간, 그때, 그대로야.

여전히 이 자리에 있었네."



[ © 여울LEE / 따뜻한 기운과 나타난 할머니 ]



여자는 기쁘면서도 그리움이 묻은 눈물을

옷깃으로 살짝 훔쳐냈다.


마당 곳곳에 낡은 것 투성이었지만

여자는 그런 낡음을 보며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삐그덕 소리가 정겹게 울려 퍼지는

마루에 털썩 앉더니, 여자가 말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여기로 오는 편안한 길을 두고,

꽤나 멀리 돌아왔어요. 곧장 올 걸."


여자가 올려다본 시선 끝엔

맑은 하늘을 유유히 흘러 다니는 맑은 날의

구름들이 보였다.


잠시 눈을 감고, 조용한 시골 향기와 소리를

담아보던 여자의 시간.


그때, 어디선가 여자를 감싸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고. 여자는 깜짝 놀라며

감았던 눈을 힘껏 떴다.


그리곤 곧, 경이로운 현상이 펼쳐졌다.


여자는 울먹거렸고, 그 앞엔

여자를 향해 온화한 웃음 지어 보이는

키 작은 백발의 할머니가 서 있었다.

.

.


여자는 놀란 마음에 마루에서 신발도

못 신은 채, 할머니를 향해 달려와

자신의 품에 가득 안았다.


할머니도 그런 여자의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고생했네. 먼 길 돌아오느라."



[ © 여울LEE / 할머니와 맞잡은 두 손 ]



할머니와 여자는 함께 작은 마루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며 한참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마냥, 여자의 입은

쉴 틈 없이 움직였는데. 그런 여자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눈에선 사랑이 넘칠 듯 가득 차 있었다.


여자가 잠시 자신의 입을 쉬게 해 주고,

할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대고 쉼을 청하자

할머니가 말했다.


"얼마나 쉬고 싶었을꼬. 우리 똥강아지.

뭣 하러 숨 가쁘게 다시 돌아가.

여기서 좀 더 푹 쉬어도 되니까,


있다가 천천히 가."


할머니의 말에 여자는

편안한 숨을 크게 내쉬었다.



[ © 여울LEE / 낡은 것들에 생명을 넣어주다 ]



맑은 하늘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풍경 아래,

빨간 지붕 집 안에서는 굉장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자가 보였다.


오래된 집 곳곳에 낡은 부분들을 스스로 고치고,

세월 따라 울퉁불퉁해진 마당 한 편에도 손수

콘크리트 미장을 해나가고 있었다.


여자의 이마에서 얼굴까지 또르르 흘러내리던

땀방울은, 여자의 행복한 표정을 더욱 빛나게 했다.


"금이 간 담장 벽돌들에게도, 장독대에게도,

끼익 거리며 숨 넘어갈 것 같은 낡은 문에게도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줘야지!"


여자는 마치 자신이 선택해서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가꿔주고, 새롭게 하기 위한 마음으로

금이 간 곳들을 소중히 덮고 있었다.



[ © 여울LEE / 빨간 지붕 집에서 보내는 편안한 나날 ]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전보다 훨씬 말끔해진 빨간 지붕 아래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할머니가 생전 좋아했던 꽃들도 여전히

꽃병에 담아 놓고 있었고,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줬었던

마루 밑 고양이도 여전히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여자는 이따금씩 커피를 내려 마시기도,

책을 여러 권 들고 나와 읽기도, 마당에 고갤 내미는

잡초들을 다듬기도 하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간들로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채워갔다.

.

.


가로등이 어둠을 밝혀주는 밤이 되자,

여자는 고양이와 함께 마루로 나와 나란히 앉았다.


여자는 말했다.


"저기 아주 아름답게 빛나는 별 하나 있지?

저 별은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을 떠올릴 수 있게

생각의 길을 환히 밝혀줘.


그래서 난 가만히 별을 바라보는 게 좋아."


말을 끝낸 여자는 고양이의 머리를 귀엽게 쓰다듬고

잠시 눈을 감아봤다.


감은 눈 위로 행복을 머금은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

저 별처럼 밝게 떠올랐다.


'할머니, 저 여기 오길 잘했죠?'



마당 한 편엔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던 모닥불이

시골 밤 풍경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 © 여울LEE / 여름, 카페에서의 작업 시간 ]



/ 이번화에서는 일상에 지쳐, 자신이 행복하게 지냈었던

'빨간 지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주인공 여자가 낡은 집 곳곳을 고치고, 가꿔가며

바쁜 시간 속 무심히 지나쳐왔었던 자신의

'인생의 틈'을 용기 내어 채워가는 과정을


'회복과 치유'의 의미로 표현해 본 글이었습니다.


특히,

.과거로의 회귀.

.앞을 향해 나아가는 스스로의 회복 시간.

.할머니는 여자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리움의 형상이자, 힘을 주는 존재.

.낡았지만 여전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고쳐질 수 있는 존재는, 곧 주인공 자신.


이라는 장치들을 글에 넣으며 쓰다 보니

어느샌가, 제 자신 어딘가에서도 위로를 받는

느낌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도 했답니다. ʕ ◔ᴥ◔ ʔ♥




여러분도,

힘들 때 언제든 불쑥

찾아갈 수 있는 '빨간 지붕' 있나요? (๑മܫമ)



다음화로 또 찾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의 삽화 ] 그 해, 빨간 지붕

© 여울LEE



+ 그림 제작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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