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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여여 Aug 05. 2021

7화 자연, 너는 참. 나는 심기만 했을 뿐인데.

어린 농부 이야기

“깻잎이 여름에 난다고?”

“시금치에 뿌리가 있다고?”


부끄럽지만 남해에서 처음 텃밭농사를 시작할 때, 내 수준은 딱 저 질문의 정도였다. 그럴 만도 하다. 내 고향도 시골이라면 시골이지만  집-학교-학원을 반복하는 보통의 학생이었다. 아파트, 학교와 같이 모든 것이 대체적으로 안전하며 갖춰진 곳에서 주로 생활했다. 엄마가 밥을 차려줬고, 급식을 먹었다. 가끔 엄마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땐 입맛도 어렸더라. 콩밥에 든 콩을 엄마 몰래 휴지에 뱉고 버리기 일 수였고, 국에 들어간 파는 골라냈다. 동생과는 햄을 구워 먹거나 계란찜, 김치볶음밥 정도 해 먹을 수 있었고 편의점 음식과 라면을 먹었다.


하지만 커서 보니 우리는 할머니께서 신선한 야채를 공급해주시기도 하고 엄마는 종종 아침장에서 장을 보곤 하셨다. 우리 엄마도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으신 편이라 이것저것 만들거나 먹으러 가기를 좋아하셨다.

함께 같은 집에 살지만 그땐 그랬더라.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나는 콩과 파도 좋아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곳은 야생, 정글과도 같은 삶이다. 짜인 시간표도, 교과서도 없다. 내편이었던 엄마도 없다. 오롯이 나 혼자가 되어 모든 것들을 만나야 했다. 사실 대농도 아니고 다섯 식구가 먹기 충분한 텃밭이 집에서 몇 걸음 안 되는 코앞에 있다면 너무 행복한 일이다. 봄이 되면 푸릇푸릇한 자연의 생명을 느낄 수 있고 여름이 되면 무르익은 각종 작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여름,잡초와 작물이 뒤섞인 밭

아름다운 자연 속 나의 터전을 만들려면 이 자연과 친해져야 한다. 그 행복을 맛보기 위해선 할 일이 가득하다. 풀들은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지 모르겠고 텃밭의 시간도 빠르기만 하다. 여름이면 작물이 무성하고 그만큼 잡초도 많아진다.


작물이 황금기를 맞는 여름  , 가장 바쁘다.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라는 말처럼 삼촌께선 손이 많이  때가 있다고 하셨다.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니..  갈래야   수가 없다. 뒷산에서 부엽토를 긁어 모아 흙에 영양을 공급한다. 나는 정말  포대 쓸어   같았는데, 우리 텃밭엔 간에 기별도  간다. 흙이 건강해야  자리에서 크는 작물이 무럭무럭   자란다고 그랬다. 매번 가기 싫지만 포대와 갈퀴를 들고 산에 오른다.

흰민들레가 어디에 좋데요.

시들어 버린 작물은 뽑아내고 밭을 정리해준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여긴  자리야!” 하며 자리를 잡은 새싹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면 잠시 생각에 빠진다. '얘가 여기 있어야 되나?'  작물들이   자랄  있는 환경으로 옮기거나 보살펴준다.  사소한 고민이 어느새  작물을 알게 한다. 어쩌면  여기저기 자신을 뽐내려는 애들일지도. 우리 밭엔 흰민들레가 여기저기 피었었는데,  민들레들을 한자리에 모으려는 숙모의 희망에 따라 나중엔 흰민들레 밭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무럭무럭 오이들

파종시기엔 먹고 싶은 야채를 심어 볼 수 있는 기회다. 장에 가면 그 계절에 맞는 모종들이 줄 서있다. 그 사이 먹고 싶었던 것, 키우고 싶었던 작물을 골라 심는다. 그 재미가 텃밭을 가게 하는 힘이랄까? 언젠가 무럭무럭 자라 맛있게 먹을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행복하다. 상상뿐 아니라 실제 여름이 되면 아침에 눈만 뜨면 자라 있는 오이, 세워둔 지지대보다 넘치게 커버린 토마토, 무럭무럭 자라는 고추와 가지, 정말 '풍요로움'이라는 것을 느낀다.


먹을 수 있는 새싹도 자라나지만 이 밭에선 잡초가 되는 아이들도 자란다. 우리의 새싹을 이기지 못하도록 세력 관리를 해줘야 한다. 사실 잡초는 그저 우리가 잘 모를 뿐. 이 밭에선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도 잡초는 정말 짜증 난다.


어느새 작은 농부가 되어간다. 자연이 하는 일에 비하면 내 할 일은 딱 정해져 있다. 가끔 놓쳐도 알아서 해줄 때도 있다. 덕분에 삼시 세 끼를 해 먹는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반찬 걱정은 그리 없다. '오늘 뭐해먹지?'라는 생각은 텃밭에 가보면 답이 나온다. 그날의 날씨, 작물의 상태에 따라 나의 일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해가 뜨면 눈이 떠지고 해가 지면 졸리는 몸상태가 되었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는데,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었네. 그 노동의 힘듬과 성취감 그리고 찾아오는 졸음. 낮잠. 지금도 내 온몸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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