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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Oct 18. 2021

어느 날 아빠가 죽고 싶다고 했다

    

결혼한 지 30년 넘게 네 아빠랑 살다가 죽고 싶다는 말은 처음이야, 라고 말하며 엄마는 아빠가 보낸 문자를 보여주었다. 핸드폰 화면 속엔 그냥 다 포기하고 죽고 싶다는 내용의 글자가 적혀있었다. 나는 겉으론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론 적잖이 놀랐다. 4번의 사업을 말아먹는 동안에도(슬프게도 현재진행형이다) 아빠는 한 번도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너는 금방이라도 자살할 거 같은 친구가 옆에 있다면 뭐라고 얘기해 줄 거야?”라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쎄....”라며 한참을 말꼬리를 늘렸다.


그런데 그 어려운 대답을 나는 또 다른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친애하는 j와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퇴근 후, 노골노골 녹초가 되어 침대에 엎어져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 다 계약직인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또 어떻게 밥벌이를 하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이란 뭘까, 앞으로 뭘 더 배우고 습득해야 하나, 우리도 나중에 늙어서 고된 육체노동의 굴레 속에 처박히지는 않을까, 이런 말들을 두서없이 줄줄 내뱉었다.


그러다 둘 다 문득 깨달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나쁜 상상과 불안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내일에 대한 걱정과 염려는 지금 당장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고 생각해봤자 결국 한 치 앞도 모를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자 친구는 “아! 정말 내일 일은 하나도 모르겠고 과거에 대한 후회는 끝도 없다!”라며 이 음울한 대화의 악순환을 끊어내려 했다. 그리고서 우리가 마주한 사실은 이런 것이다.  


“딱 오늘 하루만 잘 넘겨보자”     


딱 오늘 하루만큼만 잘 견뎌보자고, 내일은 모르겠고 어제는 상관없으니 오늘만 어떻게든 무탈하게 넘겨보자고. 그게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마치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그날 당장 닥친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자고. 우리 삼일 뒤의 일도 예측하지 말고, 과거에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도 더 이상 괘념치 않고 진짜, 딱, 오늘 하루만, 어떻게든 잘.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 결 편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과거의 후회들을 잠재울 수 있는 마법의 문장처럼 느껴졌다. ‘오늘만 무사히 넘기면 돼, 오늘만.’ 이라고 생각하자 정말 오늘만 무탈하게 넘기면 어떻게든 삶이 스스로 방향을 잡고 굴러갈 것 같았다. 다음 주에 닥칠 월요일이야 모르겠고 당장 오늘의 금요일만 잘 넘기면 어떻게든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흘려보낸 오늘의 끝자락에서 이불을 덮으며 오늘치의 몫이 끝났다는 안도 속에서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오늘 하루가 고됐고, 내일은 희망이 없을 것처럼 보이더라도 일단 오늘은 이차저차 넘겼으니 됐다고 안심하면서.



그러니 이제라도 그때 아빠에게 하지 못했던 답을 하고 싶다.

   

아빠, 우리 오늘 하루만 잘 넘겨봐요, 

죽지 말고, 오늘 하루만, 하루씩만 어떻게든 버텨 봐요. 

그러면 분명 마법같이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오늘을 어떻게든 넘겼으니, 내일도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우리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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