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란 Jul 18. 2022

안 망했는데 자꾸  망했다고 할 때 읽는 글


친구 J가 퇴사를 하고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다. 보건소 아르바이트였는데, 시간과 보수 모두 꽤 만족스러운 조건이었다고. 그런데 그게 다른 사람들 눈에도 썩 괜찮아보였는지, 5명 뽑는 자리에 70명이 넘는 사람이 지원했다고 했다. 나이 대는 20대 초반부터 60대까지 다양했는데, 모두 하나같이 간절해 보였다고. 친구는 사람들 눈에 깃든 그 간절함을 보고 아,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간절함, 나는 이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간절함, 그것은 어느 작가님이 말씀하신대로 때로는 한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간절함이 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중학교 3학년 때, 특목고를 준비했다. 그때 나는 필사적이었다. 누구보다 간절했다. 얼마나 간절했느냐면, 학교를 마치고 바로 학원에 가 새벽 12시까지 공부했고, 다시 집에 와 새벽 2시까지 공부를 더 하고 잤다. 티비나 컴퓨터를 비롯한 영화, 음악, 교과서를 제외한 책 등 모든 문화생활을 끊고, 공부 때문에 친구들과도 멀리 지냈다. 쉬는 시간에도 문제집에 코를 박고 숙제를 했고, 시험에서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된다는 엄청난 강박과 부담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죽어라 일 년 간 공부만 했다. 그런데 아이코, 이를 어째, 간발의 차로 떨어졌다. 기어코 떨어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필사적이었건만.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나는, 내신을 잘 받아 대학이라도 좋은 데 가야 한다며 다시 3년간을 닭장 안의 닭처럼 하루 온 종일 학교에 갇혀 공부를 했다. 그런데 수능에서 실수를 연발한 탓에 시험을 대차게 말아먹고, 목표하던 대학에서 떨어졌다. 그렇다. 또, 떨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그때 실패를 배웠고,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따위의 말은 성공의 대로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이들이 만들어낸 허울 좋은 말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때 더없이 비참했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내 모든 것을 다 걸었는데. 계속 실패로 점철된 결과를 받으니,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간절했던 만큼, 딱 그 크기만큼 나는 괴로웠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으며, 비참하고 또 비참했다.


20대 중반에는 취업에 간절했다. 하루 온종일 자기소개서를 붙들고 있었고, 매일 침대에서 전전긍긍하며 불면의 밤을 보냈다. 간절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못 먹고, 못 자고 적은 자기소개서와 이력서가 서류면접에서조차 붙지 않았을 때에는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싶었고, 스스로를 심하게 책망했다.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날에는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인간’이라며 자신을 갉아먹었다. 간절함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비참함의 크기도 덩달아 커져만 갔다. 그것은 곧 자기혐오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10대와 20대를 보내고 도달한 스물아홉. 나는 놀랍게도 이제 그 어떤 것에도 간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제껏 사회에서 구르고 처절하게 실패하고 인생에서 밑바닥을 찍는 동안에, 나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은 어떻게 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전에 그렇게 간절했던 이유는, 사회에서 항상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 인생은 망한다고.


그런데 살아보니 그렇지가 않더라. 특목고에 가지 않아도,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취업을 하지 않아도, 우울증에 걸려도, 강박증으로 앓아도, 글을 쓰지 않아도 내 인생은 결코 망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도 내 삶은 이어졌고, 나는 남들과 같이 아침과 밤을 맞으며 일상을 꾸려갔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고, 똑같이 먹고 자고, 숨을 쉬고, 가끔 운동을 하고, 종종 우울하고 간간이 웃는 그런 일상을 보내왔다.


언제나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했으며,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때로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내게 주어진 길을 착실히 걸어왔다. 비록 원하던 길은 아니었지만, 그 속에서 뜻밖의 기쁨을 발견하고, 행복을 일구어내며 발걸음을 떼 왔다. 길가에 간간이 심겨져 있는 꽃도 구경하고, 하늘도 한 번씩 올려다보며 걸었다.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고 쉬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제껏 별 탈 없이, 무사히, 안전하고 씩씩하게 일상을 건너왔다. 그런데 그 누가 이런 삶을 망했다고 할 수 있으랴. 누가 그런 인생은 망했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 있느냔 말이야.


실은 인생에서 큰일 같은 건, 그러니까 인생이 망하는 일 같은 건 영영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 삶은 이어질 것이고 나는 무탈하게 늙어 평범하디 평범한 할머니가 될 것이다. 직장에서 잘려도 아침은 왔으며 백수가 되어도 밥은 먹고 살았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지냈을 때도 여전히 하루가 시작되고 저물었으며,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러니 나는 이제 더 이상 간절하지도, 필사적이지도 않다. 그렇게 기를 쓰고 악을 쓰며 살지 않는다. 더 이상 낮은 가능성에 내가 가진 것들을 내걸고, 이게 안 되면 어떡하나, 걱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슬퍼하지도,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자기 비관과 연민에도 빠지지도 않는다. 어차피 인생은 잘되면 잘 되는 대로 굴러갈 것이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또 굴러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구르든,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임을 이제는 안다.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전에 아빠랑 같이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한 적이 있다. 자꾸만 반 바퀴를 채 못 돌고 멈춰 서서 쉬는 나를 보며 아빠는 말했다.


“천천히 뛰어야 해, 빨리 뛰면 오래 못 뛰어, 관절에 무리도 오고.”


나는 이제 그렇게 살고 싶다. 천천히 달리고 오래 달리는 사람이. 사회에서는 그렇게 달리다간 망한다며 나를 계속 부추겨도, 이제는 전속력으로 달고 싶지 않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넘어지고, 실망하고, 완전히 방전되어서 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에 휩싸이고 싶지 않다. 대신 허허, 이렇게 천천히 달려도 안 망하네, 생각하며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고, 꽃도 보고 풀냄새도 맡고 하늘도 올려다보면서 뛰고 싶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찬찬히 걸으며, 역시. 이렇게 살아도 아무 탈 없군, 생각하며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꼭 쥐고 털레털레 걸음을 떼고 싶다. 이래나 저래나 마음 편히 걷고 싶다. 어쩌면 그런 태도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 아니겠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