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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계절, 봄

by 린꽃


어느덧 찾아온 봄, 한동안 꽃샘추위가 이어지던 게 무색하게 강원도 끝자락에 위치한 산골에도 봄은 찾아왔다.
따스한 햇살에 논밭이며 집 앞의 산에도 싹이 돋기 시작하고 간간이 작은 들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봄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예쁜 빛을 잃지 않는 작은 꽃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슬픈 마음이 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지만 내 꽃이 피어나기까지는 왜 이렇게 폭풍이 몰아치는 날도 많고, 맑은 날이 이렇게도 많은데 내게는 햇볕 한줄기 들지 않은 채 너무 힘들기만 한지.
어쩌면 나는 평생 한 번의 꽃을 못 피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까지의 모든 날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 번도 피워보지 못한 내 꽃이 어떤 형태일지, 어떤 빛을 가지고 있을지 생각하지도 못한 채 꽃을 피워내기는커녕 존재 자체가 힘든 세상 속에서 찢기고 꺾어진 채로 어떻게든 살아내려 아등바등했던 지난날은 결국에 부질없음을 느끼고 좌절해 모든 성장을 멈춘 지금의 나를 남길뿐이었다.
더 이상 한 번의 햇살이 들던 날이 그립지 않았고 꽃을 피워내리란 목표도 사라졌다. 그저 잘 사라지고 싶었다. 이렇게 바싹바싹 말라가다가 아무도 모르게 흙 속에 묻히고 싶었다.



나의 계절이 여전히 한겨울인 것과는 별개로 시간은 꾸준히 흘러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얼어있던 논밭 사이로 파릇한 새싹들이 보이고, 나뭇가지 끝에는 단단하게 감싸진 초록빛 작은 봉오리들이 맺혀있다.
잘 보이진 않지만, 모든 게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봄이 찾아왔어도 나는 여전히 움츠러들어 피어나기 시작하는 새싹과 생동하는 자연 속에서 다 마른 잎을 유지한 채 더 움츠러들 뿐이었다.
분명 나는 다시 피어나고 싶지 않은데, 지금도 꽃을 피울 자신이 없는데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이나 봄의 따뜻한 햇살이 나를 다독인다. 뿌리를 적시는 잠깐의 봄비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다시 새 잎이 자라나기 시작하고, 파릇한 줄기엔 힘이 생긴다.
이번 계절도 꽃을 피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나는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다시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찢기고 꺾인 내 줄기 끝에도 내 삶을 닮은 꽃봉오리가 맺혀 꽃을 틔우리란 작은 기대를 가져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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