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에서의 첫 벚꽃구경
내가 사는 곳인 강원도 화천은 봄이 늦는 것만큼 꽃도 제일 늦게 핀다.
다른 곳은 벚꽃이 만개했을 때에 며칠 눈이 내렸고, 한동안 봄의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는 추운 날씨가 이어졌기 때문에 꽃이 피어도 만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눈이 그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천읍내를 갔을 때에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임신을 한 이후로 근거리의 운전도 힘들어서 여행도 가지 못하고 있는 탓에 이번 봄은 꼼짝없이 꽃을 못 보고 넘어가겠구나, 싶었는데 병원에 가던 길에 본 만개한 꽃들은 정말 벅찰 만큼 예뻤다.
다른 지역에 꽃이 만발할 때 불과 일주일 전까지도 화천엔 쌓일 만큼 눈이 왔던 터라 꽃이 피기도 전에 지겠구나 싶어 이만큼 만개한 것도 너무 반가웠다.
결국 지나치지 못하고 가던 길에 차를 세워두고 잠깐동안 꽃으로 가득한 길을 걸었다.
가장 늦게 4월 말이 되어서야 꽃이 만개하는 화천의 벚꽃은 생각보다 더 예뻤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쯤에는 화천에서 춘천으로 출퇴근을 하며 교대근무를 하고 있던 터라 봄이 와도 봄인 줄을 몰랐었다.
이제야 마음껏 만끽하는 봄은 여유로운 마음 덕분인지 그간 본 꽃들 중에 제일 예뻤다.
읍내에 꽃이 피고 얼마 뒤에는 우리 동네에도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인근에 벚꽃길이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산책길 곳곳에 아름다운 꽃길들이 가득하다.
집 앞에도 크고 작은 벚꽃나무가 만발했고,
목련나무도 예쁜 꽃을 피워냈다.
겨울 동안 앙상하던 나무들이 저마다의 꽃들을 피워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름도 모르는 꽃일지라도 길을 걷는 내내, 다양한 꽃향기들이 내 곁에 함께했다.
집 뒤의 공터에도 정말 찬란하게 꽃이 피었다.
딱 한 그루인데도 너무 예뻐서 매일 밤낮으로 벚꽃나무를 보러 갔다.
꽃이 다 떨어지기 전에 매일 보는 꽃 앞에서 사진도 남기고 싶어서 아침에 퇴근한 남편을 데리고 집 앞에 만개한 꽃 앞에서 사진도 남겼다.
잠깐이긴 하지만 집 앞에서라도 남편과 함께 꽃을 볼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먼 곳으로 꽃놀이를 가지 못하더라도, 그저 이 순간을 내가 행복하게 느낄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다음날 비소식이 있어 비가 내리고 난 뒤에는 꽃이 다 떨어질 것 같아서 동네 친구와 저녁즈음에 또다시 꽃구경을 나왔다.
낮에 남편과 사진을 찍은 꽃나무 아래에서 친구의 강아지와 사진도 남기고, 들뜬 마음에 꽃길을 찾아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근방의 체육공원 뒤쪽의 산책길을 걷는데 정말 천지가 꽃이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하얀 꽃도 해 질 녘의 햇살에 정말 예뻐 보였다.
산책길 가득하던 벚꽃길.
차도 잘 지나가지 않는 길이라 천천히 여유를 만끽하며 꽃을 구경했다.
흐르는 물소리, 향긋한 꽃 향기와 불어오던 따뜻한 바람까지 모든 게 완벽했던 이 날의 산책길.
이 평화로운 순간이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랐다.
글을 쓰는 오늘은 바람과 함께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온 후로는 꽃도 다 떨어져 있을 거고, 급격하게 더워져 곧 이곳에도 여름이 찾아올 거다.
여름엔 이 예쁘던 분홍빛 벚꽃길이 푸른 잎과 함께 그늘을 만들어줄 테니 이번 여름도 행복하게 보내야지.
2025년 화천 사내면에서의 첫 꽃구경,
낯선 타향살이가 쉽진 않았지만 1년간 시골에서 잘 살아낸 보상인 듯 벅차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화답해 준 자연에 정말 감사하다.
올봄의 기억은 아마 내 생에 가장 평화롭고 예뻤던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