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의 짓밟힌 마지막
긴 겨울이 지나 봄이 되고 겨우내 잠들어있던 개구리들이 다시 깨어났다. 그와 동시에 길을 잘못 들어 한순간 죽음을 맞이하는 개구리들도 늘어났다. 강변 옆의 도로에는 두어 걸음에 한 마리쯤 꽤 많은 개구리들이 죽어있다. 어쩌다 이곳까지 나와 죽음을 맞이한 건지, 안타까운 마음에 매일 강변을 따라 이어진 도롯가를 걸었다.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진 개구리 사이를 걸으며 혹시나 잘못 도로로 나온 개구리가 있는지 수시로 살폈다. 자기가 가는 곳이 죽음의 종착지인 줄도 모르고 도로로 유유히 기어가고 있는 개구리를 발견하면 차가 오기 전에 다시 물가로 몰았다. 비록 당장의 죽음은 피했어도 또다시 도로로 향할 수도 있을 거고 곧 알을 낳고 명을 다하겠지만 잠시라도 그 작은 생명이 조금 더 이어지길 바랐다.
개구리를 조금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매일을 걷던 얼마 전, 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인근 학교의 하교 시간 즈음이었다. 아이들도 보기 힘든 산골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학생들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데 그중 제일 마지막에 혼자 걷는 한 아이의 걸음이 이상했다. 강변을 따라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듯 연신 땅을 보고 걷던 그 아이는 규칙적으로 연신 뭔가를 밟고 있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의아한 것도 잠시, 내 발끝에 곧 죽은 듯 찌그러진 개구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그 아이가 주기적으로 밟고 있는 게 개구리였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큰 충격에 사로잡혀 빠른 걸음으로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나와 가까워지던 와중에도 이어지던 그 아이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잠시 두려운 마음도 들긴 했지만 당장에 다른 개구리를 더 밟기 전에 막아야 했다.
내가 다가가는줄도 모른 채 열심히 개구리에게 발길질을 하는 그 아이에게 뭐 하는 짓이냐 한마디를 던지니 힐끔 나를 쳐다보고는 그대로 달려가버렸다.
허탈하게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발치와 다시 뒤돈 자리에는 죽은 개구리들이 가득했다. 그제야 차가 지나갈 수 없는 거리에, 도롯가 턱의 바로 옆에 죽어있던 개구리의 모습이 보였다.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밟힌 개구리를 보며 눈물이 차올랐다.
차가운 겨울을 견뎌내고 깨어나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 너무 잔인했다.
개구리가 있는 줄을 모르고 지나간 차들이야 그 죽음을 의도한게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일부러 개구리를 찾아 죽인 그 아이의 마음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를 만난 후 그때의 잔상이 오래도록 떠나질 않고 맴돌아 한동안은 너무 혼란스러웠다. 대체 왜,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나 그저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인 개구리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죽였어야 했는지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시골에서 자란 나의 학창 시절에도 주변에 그런 아이들은 늘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가을에 잠자리를 잡아 날개를 뗀다거나 개미를 돋보기로 태워 죽이는 건 흥미로운 놀이 같은 거였다.
아무리 다른 아이들이 야만적이다, 하지 말라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개구리를 밟던 그 아이의 아무런 죄책감이 없던 얼굴을 봤을 때 불현듯 장난삼아 곤충들을 죽이던 과거의 그 아이들의 얼굴과 표정이 겹쳐져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무렇지 않게 생명을 짓밟던 그 얼굴들이 아마 내가 살면서 기억하는 제일 무서운 얼굴일 것 같다.
그저 놀이였을 뿐인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잔인했던 일인지 훗날 꼭 깨닫길 바란다.
그들이 하찮게 여긴 생명이 작은 몸으로 세상 밖에 나오기 위해 어떤 시간을 견뎠을지 한 번이라도 생각하길 바란다.
그 어떤 생명도 무용하게 생기고 사라지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힘없이 짓밟혀간 그 작은 생명들의 처참한 마지막이 내내 마음을 파고들어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