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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가르쳐준 따뜻한 손길

작은 생명을 위한 작은 손길

by 린꽃


시골에 살다 보면 길 위에서 마주치는 작은 생명들이 있다.

동네 산책을 할 때면 무심코 내디딘 나의 발걸음에 개미나 곤충이 밟힐까 봐 분주하게 바닥을 살피며 걷기에 바쁘다.

그중에서도 비가 온 다음 날이면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존재는 바로, 달팽이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밟혀버릴지도 모를 만큼 길 위를 여유롭게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달팽이들의 옆에는 밟혀 죽은 달팽이들의 잔해도 보여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달팽이가 보일 때마다 다가가 달팽이의 심장이 뛰는 걸 눈으로 확인한 다음 조심조심 들어 풀숲 한편에 내려놓는다.



길을 잘못 든 달팽이나 개구리들을 옮겨주는 건
시골살이를 하는 내내 나만 아는 작은 루틴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작은 생명을 손에 담아 작지만 규칙적으로 심장이 뛰는 걸 보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이, 나에겐 일종의 위로와도 같았다.
그 작은 생이 허무하게 길 위에서 밟혀 죽지 않고 조금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으니까.



최근 임신 후기에 접어들어 부쩍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길가 곳곳의 달팽이를 주우려면 무게 중심이 흐트러지고 숨이 차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몸은 제 멋대로 움직이며
손보다 배가 먼저 내려가고, 금방이라도 균형을 잃을 것 같아 간신히 배를 받치고 쪼그려 앉아 달팽이를 줍거나, 아예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 바람에 무릎엔 어느덧 상처가 늘어가다가 나중엔
앉으려 할 때마다 묵직한 아랫배 통증이 있어 차마 줍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지나가는 일이 늘었다.
함께 산책하며 달팽이를 줍지 못해 종종거리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어느 날 조심스레 말했다.
"내가 주울게. 저기 풀숲으로 놔주면 되지?"



그 말 한마디에 나는 피식 웃으며
"달팽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달팽이를 잡아~" 얘기했다.
시골에서 자라 곤충이나 달팽이를 잡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나와는 달리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남편은 지금껏 산책길에 개구리나 달팽이를 들어 옮겨주는 나를 볼 때마다 기겁하곤 했다.
남편은 예전 같았으면 절대 손대지 않았을 달팽이를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손끝으로 살며시 집어 들었다.
찡그린 얼굴로 조심조심 달팽이를 들어 풀숲에 내려놓는 남편의 낯설지만 다정한 뒷모습을 보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다가 잘했다고 얘기하며 가만히 쓰다듬어줬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스며드는 거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나는 오랫동안 달팽이에게 새로운 길을 내어주었고
이제는 남편이 배가 부른 나를 대신해 달팽이의 다음 생을 이어주고 있다.
훗날 태어날 뱃속의 나의 아이도 이렇게 작은 생명을 들여다보고, 살리는 사람이 되어줄까.
우리의 아이도 자연을 사랑하고 작은 생명을 돌보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생명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이렇게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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