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선물처럼 다가오는 순간
어느덧 찾아온 임신 후기, 우리 부부에게 의미 있는 곳에서 만삭 촬영을 하기 위해 철원의 쉬리 공원을 찾았다.
남편과 연애를 하던 시절부터 찾은 쉬리 공원은 내게 오랜 시간 시골살이를 버티게 해 준 곳이자 힘들 때마다 평온한 풍경으로 위로를 건넸던 소중한 곳이라 이곳에서의 촬영은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최근 연일 내린 장맛비로 강물은 넘칠 듯 불어있었고 늘 남편의 손을 잡고 건너던 돌다리는 높아진 물의 수위에 가려져 있었다.
때문에 제일 찍고 싶었던 돌다리를 건너는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예쁜 들꽃들이 피고 나무가 드리워진 산책길을 거닐며 쉬리공원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열심히 사진으로 담았다.
한낮에 30도가 넘어가는 뜨거운 날씨라 몸은 힘들었지만 배 속의 아이에게 내가 사랑하는 자연 속 평화로운 풍경을 기억시켜주고 싶었다.
다양한 곳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멈춰 서서 사진을 찍던 그때였다.
멀리서부터 잔뜩 들뜬 걸음으로 산책을 하며 걸어오던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신나게 뛰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처음 보는 강아지는 마치 나를 아는 듯 눈을 맞추고 해맑게 웃으며 촬영을 하던 우리의 앵글 속으로 다가오더니, 내 앞에서 자연스럽게 앉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잠시 깜짝 놀랐지만 어쩐지 이 순간이 오래전부터 약속된 장면처럼 느껴져서 나도 당연하게 손을 뻗어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강아지는 내 옆에 나란히 앉기도 하고, 무릎에 기대어 앉아 내 배를 향해 코를 댔다가 다시 장난스럽게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런 강아지를 보며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너도 사진 찍을 거야? 우리랑 같이 찍자~"
강아지는 정말 내 말을 알아듣는 듯, 내 옆에 기대어 딱 붙어 앉았다.
사진을 찍어주시던 분도 웃으며 우리의 사진을 남겼고, 주인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뿌듯한 얼굴로 강아지를 바라보시며
강아지가 조금 더 예쁜 얼굴을 할 수 있게 달래며 도와주셨다.
바로 뒤에서는 마치 우리가 만든 이 장면을 배경음으로 연주해 주는 듯 강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이 선물 같은 장소에서 부드러운 강아지의 털을 만지던 순간이 정말이지 꿈결처럼 행복했다.
그렇게 사진 몇 장을 더 찍고, 강아지와 둘이서도 사진을 남기고 난 후에는 한동안 강아지를 더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강물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털의 촉감까지.
한순간도 놓치기 싫은 그날의 기억을 고이 접어 우리 아기에게도 전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강아지를 만지며 노는 내내 나의 행복을 느낀 듯 아기의 태동도 느껴져 더욱 행복했다.
그날 나는 알았다.
삶이 선물처럼 다가오는 순간은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우연 속에서 오는 것이라는 걸.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날의 따뜻한 기억을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