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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의 일상과 루틴

시골 장날 풍경

by 린꽃


제일 늦게 봄이 찾아오는 강원도 끝자락의 우리 동네엔 5월 중순을 넘어선 이제야 철쭉이며 봄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얼마 전 태교여행으로 다녀온 제주에서는 사방에 만개했던 수국도 이제 막 피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초록빛의 자연과 함께 이제 막 피어나는 꽃망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너무 예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요즘의 나는 점점 불러오는 배로 뭘 먹어도 소화가 되질 않아 점심 저녁에 삼십 분씩은 집 근처를 산책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전엔 먹고 눕는 게 일상이었는데 임신한 덕에 조금은 건강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늘 혼자 산책을 하다가, 전날 남편이 밤샘근무를 하고 점심즈음 퇴근하자마자 함께 산책을 나왔다. 늘 보러 가는 동네의 강아지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행복하다. 내겐 이 외로운 곳에서 하루씩 더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오가는 길에 빙글빙글 꼬리를 돌리며 반겨주던 우리 동네의 마스코트인 강아지 토실이.
이 녀석의 해맑은 얼굴은 정말 주기적으로 봐야 한다.



더운 날씨에 산책길에 바닥에 눌어붙어있는 달팽이들이 많았다.
밟혀 죽은 달팽이들도 많이 보이기에 결국 걸음마다 하나씩 주워서 달팽이의 심장이 뛰는 걸 확인하고 물가의 풀숲으로 보내줬다.


이 작은 달팽이의 심장이 뛰는 걸 보는 건 여름동안의 내 작은 행복이다. 더운 날 바닥에 붙어있는 달팽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편에게 달팽이 심장 뛰는 걸 보여주니 달팽이 심장 뛰는 건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작은 달팽이의 심장도 무더위에 살아보겠다고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는데, 그 삶이 길에서 밟혀 죽는 걸로 생을 다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강아지들을 보고, 산책을 하고 돌아가는 길엔 동네의 번화가에 장이 열려있었다.



장이라고 해봐야 한 골목에 작은 규모로 열리지만 장날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날이다.



이 날은 길가에 고소한 냄새를 가득 풍기는 분식집도 열리고,



이곳에선 보기 힘든 생선을 파는 곳도 있다.
빨간 바구니에 담긴 미꾸라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옛날 과자나 간식, 옷들도 판매하고 과일도 종류별로 판매한다.



색색깔의 꽃들도 많아서 꽃구경도 하다 온다.
흔히 볼 수 없는 알록달록한 꽃들을 볼 수 있는 장날 풍경.



지나가는 길에 추억의 피카추가 보여서 결국 참지 못하고 사 먹었다.
초등학생 때의 진한 향수가 떠오르는 맛이었다.
임신한 이후에 남편은 내가 군것질을 하는 걸 볼 때마다 잔소리를 하지만 장날은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이날만은 예외로 봐주는 편이다.



장날엔 새우튀김차며 훈제구이 차가 오는데,
이날은 새우튀김 차가 보여서 어김없이 새우튀김을 사 왔다. 주문을 하면 바로 튀겨주셔서 따끈하게 먹을 수 있다.



도시에선 마음만 먹으면 먹을 수 있는 새우튀김이지만 시골에서는 드물게 가끔 오기에 더 소중한 먹거리이다.



시골엔 어쩔 수 없이 알고 있어야 하는 루틴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피엑스에 매일 물품 들어오는 날이나 시간, 장이 열리는 날 같은 것들.
우리 집은 번화가에서도 동떨어져 있어서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기껏 먼 곳까지 가서도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우고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수요일마다 동네에 과일트럭차가 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번씩 낮에 웬 트럭에 사람이 바글거리는걸 집에서 궁금해하며 내다보곤 했는데, 알고 보니 매주 한 번씩 과일차로는 날이 있다기에 구경을 나갔는데 신선한 과일이 꽤 많았다.
시골에서 신선한 과일이나 신선식품을 구하는 게 제일 큰 난제였는데, 과일 상태도 좋고 괜찮아서
이제는 나도 수요일마다 집 앞으로 오는 과일트럭차를 기다린다.

종류도 많은 편이라 그때그때 둘러보고 먹고 싶은 걸 사 온다.



그러고 보면 임신 전에는 과일을 일절 먹지 않았는데,
뱃속의 아기가 딸이어서인지 입맛이 바뀌어 몇 달을 과일만 달고 산다.
최근엔 수박 한 통을 샀는데 원래 수박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삼일 만에 혼자 다 먹어버렸다.



내가 과일을 잘 먹는다는 말에 남편 지인분이 과일도 보내주셨는데 이것도 고작 며칠도 되지 않아 다 먹었다.



요즘엔 아기 용품이며 아기옷들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오래 고민하던 아기 침대도 샀는데 너무 귀여워서 침대 내 옆자리에 두고 매일 수시로 본다.
우리 집에 세 달 뒤면 아가가 온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집 구조도 곧 바꿔야 할 것 같다. 거실 테이블이나 가구, 쓰지 않는 물건들을 당근에 나눔 하던가 버려야 할 것 같아서 정리 중이다.



미리 사둔 아기옷이나 용품들을 그냥 창고방에 쌓아두고 방치하고 있는데 언제 정리해야 할까?
사모으기만 하다 보니 점점 산처럼 안 쓰는 방에 아기용품만 가득 쌓이고 있는데 정리해야 할 날이 가까워질수록 막막하다.
하루쯤 날 잡아서 남편이랑 세탁기 청소도 하고, 아기옷이나 손수건도 다 빨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시골생활도, 아기를 맞이할 준비도 차근차근 잘 해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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