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기다리는 설레는 시간
내가 사는 강원도의 첩첩산중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임산부가 갈 만한 센터나 프로그램도 전무할뿐더러 분만취약지인 이곳에는 같은 임산부도 보기 힘들다.
임신하기 이전에는 멍하니 벽을 바라보며 혼자 울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던지라 임신을 한 이후에도 한동안 똑같은 시간을 보냈다.
임신 중기를 지나며 몇 달간 나를 괴롭게 한 입덧이 서서히 호전되면서 뭔가 태교를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도저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요즘엔 꾸준히 이것저것 사고 만들어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임신 책, 태교 책 읽기-
임신 관련 책이나 태교 책들도 종종 읽고 주수별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아기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공부도 해보고, 저녁에는 짧게 그림책이나 동화라도 읽으려고 한다.
'하루 5분 엄마목소리'를 사면서 아빠 것도 같이 주문했는데 바쁜 남편은 요즘도 집에 잘 못 들어와서 아직 책을 한쪽도 읽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남편 태교책까지 읽어야 할 것 같다.
태내교육이 중요하다는 옛날 책도 읽었는데 이 내용이 정말 와닿아서 여기 적힌 생활 계획표대로 살아보려고도 하고 있다.
물론 늘 남편이 밤 열 시 넘어 퇴근해서 그 시간엔 이미 내가 잠들 시간이라 책에 나오는 '부부가 나누는 자궁 대화' 같은 건 한 번도 나눠본 적 없지만.. 그 시간에 클래식을 듣거나 혼자서라도 채우려고 한다.
-컬러링북, 스티커북-
티브이를 보는 것 대신 클래식을 틀어두고 가끔 컬러링북을 그려보기도 하고,
찾아보다 보니 붙이는 컬러링북도 있기에 스티커 컬러링 북도 주문해 봤다.
강아지를 좋아해서 강아지로 주문했는데 정말 너무 귀여워서 완성될 때마다 힐링한다.
별생각 없이 숫자에 맞춰서 스티커들을 붙이는 여정인데..
뭔가 하고 나면 너무 귀여워서 힐링하는 데다 성취감도 있고 뿌듯하다.
손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하는 순간은 이 곳 생활에 대한 막막함도, 앞으로의 고민도 잊혀지는 듯하다.
며칠에 한 번씩은 루틴처럼 토마토 매실청이나 토마토 바질에이드도 만든다.
신혼생활을 시골에서 시작하면서 먹고 싶은걸 바로 먹을 수 없다는 게 제일 흠이었는데,
이제는 이 과정도 익숙해져서 먹고 싶은 디저트나 음식이 있으면 지금은 건강하게 직접 만들어 먹는다.
-아가옷, 인형 만들기-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나는 최근에 아기옷 만들기도 주문했다.
손싸개, 발싸개는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서 뜯기만 하고 포기한 채이다.
그래도 서툴고 삐뚤긴 하지만 아기 인형과 배냇저고리, 턱받이는 다 완성했다.
봄이 왔지만 여전히 뜨개질도 한다.
하루이틀이면 목도리 하나를 만들어서 요즘엔 다음 겨울에 또 누군가 선물해 주기 위해 그냥 쌓아두고 있다.
요즘 한참 모루인형 만들기에 재미를 붙여서 다양한 모루인형들을 만들어 보고 있다.
몽글몽글한 촉감의 실들을 만지다 보면 절로 행복해진다.
마지막으로 시골에 사는 제일 메리트라고 할 수 있는 동네 산책길 끝의, 동네 강아지 보러 가기.
매일 하루에 30-40분 정도는 강아지들이 있는 곳으로 산책을 다녀온다.
푸르른 자연을 보며 걷는 산책길도 정말 행복할뿐더러
너무 귀여운 강아지들 덕분에 매일 내게는 소중한 루틴이 생겼다.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는 귀여운 녀석들.
자주 가서 말도 걸고, 한참을 쓰다듬다 온다.
외로운 내 시골 생활에 힘이 되어주는 듬직한 강아지들은 우울한 내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아마 이 녀석들이 없었으면 나는 이 아무것도 없는 산골에서 진작에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병원 하나 없는 시골에서 임산부로 사는 건 매일이 시한폭탄 같다.
매번 혼자 운전해 산부인과를 가는 건 이미 익숙하지만
이벤트가 있어도 당장 남편도 없는데 산을 넘어 왕복 세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게 정말 큰 걱정이다.
아기가 잘 크고 있는지 궁금해도 산부인과가 멀어서 하루에 한 번 하이베베를 하는 걸로 대신해야 하는 것도 불안하다.
하지만 벌써 임신기간의 중반까지 왔으니 부디 남은 기간도 별 탈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