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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자리의 멈춘 시간

어느 시골 강아지의 잊힌 마지막

by 린꽃
시골 강아지들


첩첩산중에서 시골살이를 하는 내 일상 속, 여기저기에 있는 동네의 강아지들은 내 이야기에 항상 빼놓을 수 없는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몇몇 강아지들은 이름도 알고, 이름을 모르는 강아지들은 대략적인 특징으로 내 나름대로 별명을 붙여 지나갈 때마다 부르곤 했다.
정 많고 순수한 시골 강아지들은 내가 부르는 이름이 제 이름이 아닐지라도 자주 보는 나를 한결같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줬고 종종 외로움이 사무치는 날에는 동네의 강아지를 보러 가 한참을 놀다 오기도 했다.
혼자 강아지 앞에 앉아 맑은 눈망울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근심도 잊히는 듯했다.
가끔 혼자 얘기를 하다 울기라도 하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내 손을 핥아주고, 멀리서부터 나를 보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강아지들은 내게 제일 친한 친구들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런 강아지들의 대가 없는 사랑이 정말 고마웠고 그들 덕분에 적막하고 외로운 이곳에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씩 더 버티며 살아갈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처음 이사를 왔을 작년 겨울 즈음,
제일 처음 본 잊지 못할 강아지가 있었다.
까맣고 윤기 없는 털에 텅 빈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묶인 자리에서 제자리를 빙빙 돌던 강아지.
산책길의 길가에 뜬금없이 있던 허름한 강아지 집과 짧게 묶인 줄, 덩그러니 놓인 강아지는 보면 볼수록 마음이 아파서 자꾸만 살펴보게 되는, 내겐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해맑은 눈빛으로 사람을 그저 반기는 다른 강아지들과는 다르게 그 강아지는 항상 초점 없는 눈으로 비틀거리며 아슬아슬하게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내가 ' 멍멍아! ' 부르며 손짓을 해도 짧게 묶인 줄 안에서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간식을 줘도 받아먹지도, 간식이 있는 줄도 모르는 채로 그저 힘겹게 돌고만 있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었다.
볼 때마다 걸음걸이며 전반적인 상태는 안 좋아지고 있었지만 아마도 멈춰있는 게 스스로에게 더 고통스러웠던 듯, 더욱 느린 속도로 비틀비틀 걷는 건 멈추지 않았다.





그 강아지는 생각보다 꽤 오래 살았다.
그 해를 넘기고 다음 봄이 될 때까지 더 나아지지는 않는 상태로, 걷기도 힘들어 보이지만 멈추지 않은 채 제자리를 돌면서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살아있었다.
나는 그 강아지의 마지막을 보진 못했지만 많은 비가 내린 뒤 며칠 후 산책을 갔을 때 덩그러니 집과 낡은 목줄만 남아있었고 강아지는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강아지에게 마지막이 왔음을 직감하고 그 강아지가 떠난 자리 앞에 멈춰 한참을 강아지를 떠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래도 잘 버텼다고, 이젠 짧은 목줄이 없으니 떠난 곳에서는 제자리만 돌지 말고 마음껏 뛰어놀기도 하라고.





이사를 앞두고 떠날 때가 되니 나를 반겨주는 다른 강아지들보다도 그 강아지의 텅 빈자리가 유독 눈에 밟힌다.
익숙한 산책길을 지날 때면 더 이상 아픈 모습으로 돌고 있을 강아지도 없는데 아직도 무심코 그 자리를 쳐다보게 되고, 나도 모르게 “멍멍아” 하고 불러보게 된다.
그럴 때면 텅 빈 공기 너머로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저 비틀비틀 돌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마음 한편이 저릿하다.
곧 이곳을 떠나겠지만 아마 떠나고 나서도 그 강아지는 여전히 시골살이의 잊지 못할 풍경 속 하나로 내 마음속에 조용히 살아 있을 것 같다.
부디 강아지에게 다음 생이 있다면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뛰놀며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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