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나아갈 사람
임신 후기에 접어드니 무거워진 몸만큼이나 예민해지고 몸도 마음도 쉽게 지쳐버린다.
사소한 말에 발끈하고,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날 것 같고,
필터를 거치지 않은 부정적인 말들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무엇보다 나답지 않은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 자꾸 늘어나 괴롭다.
마치 시한폭탄처럼 갑자기 폭풍처럼 몰아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곧잘 짜증을 내거나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고 울어버린다.
그리고 그 감정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남편이다.
지난 주말에도 그랬다.
모처럼 인근의 도시 나들이를 가서는 습한 장마철에 폭염인 데다 많은 인파에 주차할 곳이 없어 식당에서 먼 곳에 주차를 해놓고 걸어가는 내내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니까 일찍 나오자고 하지 그랬냐며 시작된 말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그날 하루 종일 사소한 걸로도 타박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남편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게 보였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날카롭게 내뱉어지는 원망이 잔뜩 섞인 말들은 마치 모터가 달린 듯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남편이 운동을 다녀온다며 축 처진 어깨로 집 밖을 나서는 걸 보며 이내 내가 또 상처를 줬다는 생각에 후회가 몰려왔다.
베란다에서 터덜터덜 차에 오르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는데 미안한 감정들이 들어 이날의 일들을 찬찬히 곱씹어 봤다.
요즘따라 더욱 예민한 내 감정들을 나조차 견디기 힘든데 함께 있는 남편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내 감정은 내가 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복잡하다. 아무리 임신의 과정이라고 할지라도 나의 부정적인 변화와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는 이 낯선 여정은 하루가 다르게 버겁다.
심란한 마음으로 인터넷에 임신 후기의 짜증에 대해서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
임신 후기에 예민하고 짜증이 많아지는 이유로는,
호르몬 변화: 임신 중 증가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감정 기복을 유발할 수 있다.
신체 불편감: 배가 많이 불러오면서 숨쉬기 힘들거나, 허리와 골반 통증, 불면 등으로 피로감이 누적된다.
출산에 대한 불안감: 곧 아기를 만나게 될 기대감과 동시에 걱정, 두려움도 커진다.
일상 제약: 먹는 것, 움직이는 것 등 모든 게 조심스러워져서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무의식 중에 누적된다.
(아마 나는 임신성당뇨 확진 이후에 하루에 몇 번씩 혈당을 재고, 맛없는 음식만 먹으며 식단 조절을 하며 지내는 게 더 우울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요즘의 내 예민한 상태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보다가 남편이 돌아올 시간에 주차장에서 기다리다 잠시 산책을 하며 요즘 감정 조절을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힘들었을 텐데 별말 없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얘기하며 앞으로는 짜증이 올라올 때 딱 10초만 심호흡을 해보겠다고, 내 감정을 그대로 뱉어내지 않고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고 말을 하겠다 얘기했다.
나와 한 발자국 떨어져 내가 수시로 공격적인 말들을 할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고 말하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걷던 남편은 이제 서로에게 긍정적인 말만 하도록 하자고, 우리 둘 다 이 과정이 처음이니 함께 헤쳐나가자고 말하며 한껏 누그러진 표정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남편이 먼저 내민 손과 함께 돌아온 다정한 말이 정말 고마웠다.
나 혼자 감정을 이겨내는 게 아니라,
나의 폭풍 같은 감정을 껴안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날은 잠들기 직전까지 남편에게 수시로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얘기를 하며 쓰다듬어줬다.
다음날 아침엔 남편이 먼저 내게 다가와 매일 똑같은 임당식단으로, 맛없는 아침식사를 꾸역꾸역 먹고 있던 내게
" 나는 린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나였으면 며칠도 못 버텼을 텐데 이렇게 잘 해내고 있잖아. 임신하고 더 건강해진 것 같아서 보기 좋아. "
라며 다정한 응원의 말을 건넸다.
그런 남편의 한마디에 힘입어 나도 오늘도 고생하라고 배웅을 해주고 상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직 모든 게 서툴고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다친 마음을 안아주는 연습을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연습은 조금씩 우리를 더 단단하게,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렇게 차근차근 성장해 결국엔 우리가 우리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