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해 바뀐 일상들
임신 후반기에 접어들었어도 하루의 시작은 늘 같은 풍경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채혈기로 손끝을 찔러 공복혈당을 체크하고, 밤 사이 케톤이 나오지 않았는지 케톤을 측정했다.
피 한 방울이 숫자로 바뀌어 나를 평가하는 순간,
그 숫자가 오늘 하루의 기분을 결정했다.
매일 하루에 다섯번씩 혈당을 재면서 숫자가 높아도 걱정이었고 낮아도 걱정이었다.
임신 후기가 되니 혈당은 임당을 처음 진단받은 시점보다는 점점 안정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흰쌀밥 대신 현미와 채소,
간식이 생각날 때마다 통밀빵과 야채나 물 한잔으로 입을 달래야 했다.
친구들의 카페 약속도, 남편과의 늦은 저녁의 작은 일탈이었던 외식도 이제는 멀리서만 바라보는 그리운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식후의 운동도 매번 전쟁 같았다.
하루 세 번, 식후 30분을 채우기 위해
부른 배를 안고 힘들어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열심히 아파트를 돌았다.
비 오는 날의 운동은 왜 그렇게 서럽던지.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점도 있었다.
철마다 계절꽃을 보면서 산책을 하다 보면 임신성 당뇨 덕분에 만나는 시골의 풍경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쳤던 건 마음이었다.
'아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나는 자꾸만 '왜 나만' '그동안 충분히 건강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 ' 임신했을 때 잘 먹는 사람들도 있던데 왜 나는 마지막까지 식단관리를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빠져 자책하고 우울해했다.
손끝은 늘 따끔거렸고 눈에 띄게 손끝마다 바늘자국이 생겨났고, 매일 아침마다 재는 체중계 숫자는 마음을 흔들었다.
남편도 나를 위해 함께 식단 관리를 하고 있고,
분명 나는 혼자가 아닌데도 유난히 고독한 싸움 같았다.
하지만 내가 임신성당뇨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내가 그토록 오래 기다려왔던 나의 아기 때문이었다.
정기검진일에 무사히 주수에 맞게 자라있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바라보면 또다시 하루를 버틸 힘이 생겼다.
내 몸을 빌려 자라는 이 작은 생명이
지금 이 모든 수고의 이유였다.
오늘도 나는 건강하게 먹고 천천히 매일 걸었다.
걸으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만큼, 아기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났다.
날마다 피 한 방울로 확인한 작은 성취들이
결국 우리 둘의 건강으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이제는 조금은 확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