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자연재난인 장마.
내가 사는 곳, 화천에도 장마가 시작되었다.
나는 장마가 오는 날을 너무 싫어했다.
어릴 적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이 늘 집에 없어 장마철에 혼자 보내는 밤이 무서웠고,
간호사가 되어서는 비가 오는 날 유독 환자들이 더 힘들어하고 아플 때가 많아서 늘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하는 나도 늘 장마가 시작될 즈음이면 우울에 빠져 있었다.
한 번씩 곳곳이 침수되기도 하고, 애써 일군 농산물이 망가지기도 하고.
좋은 것 하나 없이 당연히, 장마는 어느 누구에게나 힘듦으로 다가오는 줄 알았다.
시골 살이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첩첩산중의 우리 동네엔 장마철에 스콜 같은 폭우가 몰아서 내린다.
때문에 장마철엔 습관처럼 늘 하늘을 보고 있다.
멀리서부터 비바람을 몰고 까만 구름이 몰려오면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곧 다가올 두려움에 긴장한다.
비가 쏟아질 때가 나는 제일 무섭다.
장마라고 이 기간 내내 비가 오는 건 아니다.
한 번씩 해가 뜰 때도 있고,
맑은 날도 있다.
갑자기 비가 오는 횟수가 늘어날 뿐.
동네의 바로 옆 강이 요즘 다 말라간다 싶었는데,
폭우가 한번 휩쓸고 가면 수위도 꽤 높아져 있고,
요란하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시원한 물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속 응어리진 무언가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이곳에서 장마철에만 볼 수 있는
시시각각 다양한 형태로 변하는 구름도 참 예쁘다.
적란운이 잘 뜨지 않는 산 중턱의 이곳.
장마기간이 되니 종종 다양하게 예쁜 적란운들이 보인다.
메마른 이곳에 단비가 되어주는 비가 이런 아름다운
풍경까지 선물해 주니 자연에 감사한 순간이다.
장마가 시작되면 곳곳에 달팽이들이 있다.
내가 자주 산책하는 집 옆 둑길엔 비가 오고 난 뒤면 한걸음 걸을 때마다 달팽이가 있는데,
달팽이를 누군가 밟아 으스러진 흔적들도 꽤 많이 보인다.
때문에 달팽이가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장마철 비가 그치고 나면 밖으로 나가 달팽이들을 길가에서 풀숲으로 옮겨준다.
비가 오고 뜨거운 해가 비출 때 메마른 땅에 붙어있는 달팽이들을 들어 달팽이 심장이 뛰는 걸 확인하고 잠시 보다가 물기가 있는 쪽으로 옮겨준다.
달팽이 뒤쪽에 심장이 뛰는데,
그 작은 심장도 뜨거운 태양 밑에 살겠다 요동치는 걸 보면
마음속에 작은 감동이 울렁인다.
작은 달팽이들에게 장마란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숨 쉴 곳이다.
지난 주말부터 비가 와 어제 하루 반짝 맑고는 화천은 오늘도 비가 많이 내린다.
베란다에 가만히 앉아 빗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해져 비가 오는 날도 꽤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폭우의 한가운데,
산을 타고 안개가 넘어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곳의 초록색 푸르름이 앞으로도 계속 예쁘게 피어있기 위해서는 장마가 꼭 필요하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또 내 곁에 선물 같은 자연이 펼쳐질걸 생각하니 그동안 늘 괴롭던 장마가 반갑다.
이 장마가 지났을 때,
장마를 이겨낸 이 예쁜 자연 속에서 나도 조금 더 자라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