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쉽게 허용하지 말 것
행복 안에 있을 때 방심하지 말 것
나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누군가는 인생에 제일 행복하다는 결혼식 때도 결혼준비를 하며 찾아왔던 아기의 심장이 멈춰 유산을 겪은 지 고작 한 달이라 난 고통 속을 헤맸다.
드레스를 입으며 꽉 조이는 코르셋 속에 아기가 여전히 배에 있었더라면 힘들었다고 생각하며 나 혼자 울었다.
사람들이 아기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져서 내 입으로 아기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해야 했고
뒤따른 묵직한 침묵과 안타까운 탄성을 받아들여야 했다.
달리 위로의 말을 건넬 방도가 없어 다들 말을 잇지 못하고
'어쩌다가...'
로 끝나는 말들에 그저 다 내 잘못인 것 같아서 그때마다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었다.
당시의 나는 결혼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속에서 또다시 불행을 받아들이고 끝없이 잠식되고 있었다.
때문에 결혼식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아니, 내겐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기억 중의 한순간일 뿐이다.
유산이 신호탄이 되어 내 불행에 불꽃을 지핀 격이었지만
그전에도 늘 나는 대체로 불행 속에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 늘 그랬다.
행복을 느낄 만하면 평행이론처럼 매번 불행이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불행 속에 있는 게 익숙하고 편했다.
행복을 느끼는 게 더 괴로웠다.
행복을 느낀다 싶으면 곧 찾아올 불행이 그렇게 아프고 힘들 수 없었다.
유산을 겪은 후엔 더 그랬다.
뭘 하든 죄책감을 가졌고 나는 당연히 불행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정해준 건 없었지만 내가 자초하지 않은 불행은 반년이 지나도록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뭘 해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행복을 느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혼 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로 이사 와 시골 생활을 하면서도 귀 닫고 눈 감고 불행에 심취해 있었다.
예쁜 풍경과 계절에 따라 시시때때로 바뀌는 자연은 늘 나를 행복하게 감싸고돌았지만 내게 자연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행복을 느낄만할 때면 깜짝 놀라며 나를 채찍질했다.
‘넌 이럴 자격이 없잖아, 그런 일을 겪어놓고 어떻게 행복해?’
이럴수록 지쳤다.
나도 행복하고 싶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언제까지 불행 속에 살 수는 없었다.
나를 위해서, 내 곁에 함께하는 남편을 위해서, 훗날 다시 찾아올 아기를 위해서.
그동안 나는 불행에 심취해 있으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가 행복하진 않더라도 평온했으면 해서 불행에서 도망치려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불행은 나를 늘 따라다녔기 때문에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불행과 마주해야 한다면,
불행을 만날 시간을 따로 정해두는 쪽으로 결정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행이 찾아오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정했다.
밤에 불행을 허용하는 건 위험하다.
밤의 불행은 나를 고통 속에 빠뜨리다 못해 나를 죽게 만들 수도 있다.
오래 고민하던 끝에 눈 뜨고부터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매일 눈떴을 때부터 나를 괴롭히는 시간으로 정했다.
이른 아침 일찍,
아침 일곱시.
어차피 시골의 여름은 해가 길고 나는 열시면 잠든다.
여섯시 즈음이면 이미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하기 딱 좋았다.
명상에는 아무런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베란다에 요가 매트를 한 장 펴 놓고 매일 명상을 했다.
처음에는 짧은 시간 명상을 하다가 요즘엔 짤막하게라도 요가도 같이 한다.
불행을 받아들이고 내 불행을 인정하고 위로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그땐 왜 몰랐는지,
명상을 하며 깨달았다.
그렇게 명상을 하면서 서서히 생각을 바꾸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불행 속에 있는 건 나 스스로 불행이 당연한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내가 불행을 쉽게 허용했기 때문에 나는 불행에겐 가장 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때부터 당연하다고 생각한 걸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각을 바꿔 내가 행복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적어도 이런 고통에 잠식될 만큼 불행하진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려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내 삶이 그렇게 불행하진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내겐 아직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남아있었다.
내가 쉽게 허용한 불행은 나를 끝없이 고통 속으로 밀고 들어간다.
행복 안에 있을 땐 작은 고통에도 고통을 크게 느끼지만 불행 속에서 겪는 고통은 생각보다 덜 고통스럽다고 느끼기 쉽기 때문에 결국은 불행 속에서 안정을 느끼게 되는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을 누구보다 갈구하지만 불행 속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한 채로 영원히.
내게 유산은 원하지 않았지만 일어난 필연적인 불행이었다.
살며 어떤 순간들엔 원치 않아도 필연적인 불행을 마주친다.
그 순간 불행을 쉽게 허용하지 않고 맞서야 한다.
내가 쉽게 불행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고, 난 이겨 낼 거라고.
난 널 반기지 않으니 내 곁을 알짱거리지 말라고.
불행에게 외쳐야 한다.
불행이 더 이상 날 잡아먹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