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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Jun 05. 2020

아빠는 왜 창문이 활짝 열린 거실에서 주무시나요?

몇 년 전에 알게 된 아빠의 여름밤에 대한 비밀






 제법 날씨가 무더워졌다. 어느새 웃옷을 걸치지 않고도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출퇴근을 하게 됐고, 내리쬐는 햇볕에 팔이 익어가는 계절이 왔다. 이제 곧,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감당할 수 없는 더위가 몰려오겠지. 


 여름밤.

다른 계절과는 다르게 유난히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 다 같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던 밤이라던지, 밤새 우렁차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듣다 스르르 잠에 들던 밤, 쏟아지는 별을 보고 또 보던 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던 밤 등 몇몇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갑자기 초등학교 때 걸스카우트를 하며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던 날의 모습도 떠올라 풋 하고 웃음이 나오네ㅋ.ㅋ







 엄마는 여름이 되면 집에 에어컨이 있어도 창문이란 창문을 모두 활짝 활짝 열어둔다. 온 가족이 집에 들어오고, 거의 항상 마지막으로 집에 도착하는 내가 "엄마, 에어컨 좀 틀자! 왜 안 틀었어~" 하며 리모컨을 들어야 에어컨은 그제야 제 할 일을 시작한다. 더운데 에어컨은 왜 안 틀었느냐며 물어보면 엄마는 항상 "1층이라서 창문을 열어두면 이래저래 바람이 잘 들어오니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시원해"라고 대답하시곤 했다. 흥,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혼자 있을 때 에어컨을 틀면 아깝다고 생각하는 엄마 마음을 내가 모를까 봐!


 밤에 잠에 들 때도, 진짜 고통스러울 정도의 더위가 아니고서야 우리 집은 창문을 열고 잘 때가 많았다. 아빠는 늘 밤마다 마루에 활짝 열린 큰 창 앞에 자리를 잡고 잠에 드시곤 했다. 난 그저 아빠가 너무 더워서, 바람을 더 가까이에서 맞고 싶어서 편안한 침대를 뒤로 하고, 시원한 마루 바닥에서 주무시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여름마다 활짝 활짝 열어둔 창 바로 앞에서 주무시는 아빠의 비밀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재작년 여름쯤이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된 건지는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가 끔찍이 우리를 생각한다고 넌지시 엄마가 귀띔을 해주시던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사실 밤잠에 예민하신 분이다.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쉽게 깨어 새벽에 몇 번이고 잠을 깨는 일도 부지기수여서 자기 전 귀마개를 하거나, 안대를 찾으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아빠가 매미가 맴맴 우는 시끄러운 여름밤 문턱 앞에서 주무시다니. 


"엄마, 아빠가 너무 더우신가 봐"

라고 물었던 것 같은데 엄마의 대답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니, 문이 열려있으니까 혹시 모르잖아. 누가 들어오면 어떡해.

그래서 우리 딸내미들 지키시려고 거기서 주무시는 거야.'


아뿔싸. 아빠가 시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구나.

아빠는 밤에 자는 순간까지도 두 딸 걱정을 하며 잠에 드신 거구나.







 아빠는 여전히 창문이 활짝 열린 여름밤이면 거실에서 주무시곤 한다.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해,

우리 딸은 아빠가 지킨다, 이런 낯 간지러운 애정의 마음을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하시지만 무더운 여름밤 거실에 누워 잠에 든 아빠의 모습을 보며 나 혼자서는 가늠해볼 수 없는 아빠의 사랑을 괜스레 추측해보곤 한다.


이제 여름밤, 하면 무수히 많은 장면들 중에 거실에서 곱게 잠이 든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불 한 올 덮지 않고, 여름의 무더위와 간혹 찾아오는 더운 바람, 매섭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도 끄떡없다는 듯, 당연하다는 듯 활짝 열린 창문 앞에 자리를 펴고 잠에 곤히 든 아빠의 모습을 평생 내 눈 속에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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